▲ 특정기종 지명입찰 의혹으로 논란이 됐던 서울소방이 결국 해당 업체와 수의계약을 진행한다. 사진은 서울소방 인명구조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내용과 무관함.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터널비전(tunnel vision)’이라는 현상이 있습니다. 터널을 통과할 때 특정한 것만 바라보고 나머지를 바라보지 못함으로써 주변의 대부분을 놓쳐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최근 서울소방재난본부 119특수구조단(이하 서울소방)의 다목적헬기 입찰 과정을 취재하면서 ‘터널비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주변의 다른 조건들은 재고할 여지도 없이 오롯이 ‘목적지’만을 위해 앞만보고 질주하는 모습 같았으니까요.

서울소방이 주장하는 ‘안전한 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칫하다간 조종사는 물론 시민들까지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서울소방의 ‘안전한 헬기’ 조건에 맞는 헬기가 공교롭게도 단 ‘한 곳’이거나, 그 의사결정과정이 합리적이지 않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최소비용 최대효과’는 경제의 기본원칙입니다. 일반 소비자들조차도 하나의 제품을 사기위해 가격비교는 물론, 유통기한·성분·배송비까지 꼼꼼히 따지는 수고를 마다치 않습니다. 한정된 자원을 합리적으로 이용하여 최대의 만족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서울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수백억대의 헬기를 사는 것은 더더욱 그래야 하는 것 아닐까요. ‘소방헬기’로서의 임무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지, 가격은 얼마나 아낄 수 있는지, 사후보수 비용(유지관리비)은 어떨지 등등 상당히 많은 면을 고려하고 심사숙고 해 결정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서울소방은 독일·러시아를 비롯해 한국한공우주산업 등 국내에서 헬기를 운용하고 있는 업체들 중 AW사만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해당 입찰조건에 딱 맞는 기종은 AW-189가 유일합니다. 입찰에 참여한 곳도 AW사 뿐입니다. 국산헬기든 다른나라 헬기든 여러 업체가 참여해야 비교가 가능하고, 그래야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지만 서울소방은 애써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장정숙 국민의당 의원에 따르면 수입산 헬기 장비는 향후 30~40년간 대략 도입비용의 10배에 달하는 유지보수 비용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따져보면 향후 약 3000억원 정도의 혈세가 해외로 유출되는 셈입니다. 서울시는 과도한 부채 탓에 하루 수십억원의 이자를 고스란히 물고 있는 처지입니다. 재정적자가 점점 커지고 있는 강원도, 서울시, 부산시가 다른 헬기는 원천배제하고 ‘합리적 비교’도 없이 비싼 헬기를 구매하려는 이유를 공감하기 힘든 배경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외산헬기의 횡포를 수없이 겪어왔습니다. 필요도 없는 부품 끼워팔기나 부품가격 부풀리기 등으로 폭리를 취하고, 부품도 적기에 공급이 안돼 운용효율성이 저하되는 등 각종 불편 및 예산낭비를 경험해왔습니다. 일부 관계자들은 외산헬기 교육을 명분으로 해외여행을 즐겨 물의를 빚기도 했죠. 우리나라가 수조원의 혈세를 들여 국산헬기를 개발한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게다가 국산 방산장비들은 방위사업법에 따라 매년 말에 방산원가, 재무제표, 회계자료를 공개합니다. ‘원가’가 투명하게 공개된다는 얘기입니다. 반면, 해외 제품들은 원가가 얼마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통상적으로 무역대리점에 4%대의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이는 헬기가격에 고스란히 포함됩니다. 로비나 리베이트 비용이 여기서 나옵니다. 실제 AW사는 지난해 방위산업 납품비리 사건의 중심에 선 차기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AW-159)’ 제조업체입니다. 2013년 인도에서는 대규모 리베이트 사건에 휘말려 인도 정부는 AW 헬기 도입을 전면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8월 진행된 제270회 임시회 2차 본회의 시정질문에서 국산 헬기 수리온에 대한 서울시의 입찰 배제 논란에 대해 "국제안전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헬기를 선택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서울소방이 요구하는 카테고리A가 안전의 절대기준이 아니라고 말한다. <뉴시스>
그럼에도 서울소방이 ‘AW-189’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데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힘을 실어준 탓도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소방의 특정헬기 지명입찰 의혹을 제기한 국회의원들의 지적에 “국제안전기준을 충족한 안전한 헬기를 사야 한다”고 종지부를 찍어버렸습니다. 서울소방과 박원순 시장의 논리대로라면 카테고리B를 받거나 국토부의 특별감항증명을 받은 헬기는 안전하지 않은 셈입니다. 현재 국내 9개 소방항공대에서 5개 기종(12대)이 국토교통부의 특별감항증명을 받고 소방·구조·응급환자수송 등의 임무를 수행중입니다. 모두 폐기해야 하는 걸까요?

국산장려운동이라도 펼치자는 게 아닙니다. 다만, 서울시민들의 돈 340억이 투입되는 사업에 다른 헬기들의 입찰 참여를 원천 배제하고, 기본적인 경제원칙도 적용되지 않은 채 진행된 이번 결정이 과연 ‘합리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님, 혹시 국산헬기를 직접 타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군용으로 제작된 헬기가 소방헬기로서 안전하지 않다고 단언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요.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뱉은 말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반드시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죠.

L. 윌리엄스(L.J. Williams) 박사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터널비전’이 발생하여 한 곳에 집중하게 된다는 의미는 다른 부분을 의식적 혹은 인지적 관점에서 무시한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거센 논란에도 서울소방은 AW사와 수의계약을 진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부디, 서울소방의 고집스런 의사결정이 ‘의식적인 외면’에 따른 것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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