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범 전 국방홍보원장.
[시사위크]  1997년의 IMF 구제금융 사태는 정부와 기업의 무사안일, 그리고 언론의 직무유기가 빚어낸 합작품이었다. 정부와 기업, 특히 재벌의 책임은 익히 알려졌지만 정작 언론 의 책임은 ‘제 식구 감싸기’ 식으로 축소 보도하는 바람에 일반에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IMF 폭탄이 터지기 이전부터 크고 작은 징후(Symptom)들이 나타났지만 정부 관료들과 대기업, 언론 등은 하나같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렸다. 기업의 국제경쟁력 약화와 수출감소, 기술개발 소홀 등으로 인해 경제 환경은 갈수록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었는데도 정부와 기업, 언론은 하나같이 낙관론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언론만큼은 그렇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경제전망에 불길한 징후가 보이면 즉시 경보(Warning)를 울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언론의 환경감시 기능이다. 불행하게도 IMF 당시 언론은 그런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수많은 전조들이 나타나곤 했지만 어떤 언론도 IMF 구제금융 사태를 먼저 예고하지는 못했다. 김영삼 정부 취임 초기 90%를 오르내리는 대통령 지지율에 흠뻑 도취된 나머지 정부는 물론 언론도 덩달아 태평성대만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던 1997년 11월 21일 임창열 경제부총리는 특별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IMF에 자금지원을 요청하기로 공식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국가 부체가 1500억달러가 넘는데 가진 돈은 고작 40억달러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사상 최초의 IMF 구제금융 사태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뒤를 이어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김영삼 정부가 남겨 준 IMF 구제금융에서 벗어나기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금모으기 등을 통해 불과 4년 만에 IMF를 졸업할 수 있었다. 그동안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은 고스란히 죄 없는 국민의 몫이었다. 언론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초래한 국가적 재난의 결과는 처참했다.
 
사정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불러 온 책임소재를 따져본다면, 새누리당과 청와대, 국정원과 검찰 등을 꼽아야 하겠지만 언론 역시 그 중차대한 책임 대열에서 제외될 수 없는 조직이다.

1974년 8·15 광복절 기념식 행사장에서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잃은 박근혜 당시 큰 영애는 사고 직후 영부인 역할을 대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79년 10·26 사태 이후 철저히 은둔생활을 하는 바람에 일반인들의 관심에서 완전히 멀어져 버렸다. 그 후 18년만인 1998년 대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기 시작해 내리 5선의 중진의원이 된 박근혜 대통령은 마침내 2012년 대선후보로 선출, 18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런데 국회 5선 의원을 하는 동안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어찌 보면 언론의 사각지대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육영수 여사 서거 후 박근혜 대통령은 사이비 목사 최태민과 급속히 가까워졌지만, 언론은 적극적인 취재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대선후보 시절 과거 최태민과의 관련설을 확인하려는 일부 언론의 시도가 있었으나 시늉만 내고 새로운 사실 하나 발굴해 내지 못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1979년 당시 아버지가 직접 최씨를 불러 조사해 본 결과 근거 없는 음해로 밝혀졌다”고 해명하자 언론은 거기서 더 이상 추궁하지 못하고 멈춰서 버렸다.

2013년 2월 25일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부터 국내 주요 언론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독신 여성 대통령의 일과 이외의 사생활을 철두철미 보호하는 쪽으로 방침을 지켜 나갔다. 청와대 건물 구조가 가뜩이나 구중궁궐(九重宮闕) 같다며 비판의 도마 위에 올라오던 터에 일과시간 이후 대통령의 동선은 철저히 베일 속에 가려져 버렸다. 청와대 춘추관에 등록된 출입기자가 수백 명에 달하지만, 이전 정부들과는 달리 수석 비서관들과의 접촉은 원천적으로 차단되기 일쑤였다.

이전 대통령들은 적어도 1년에 몇 번씩은 정례 기자회견을 가졌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에 딱 한 번, 그것도 처음에는 기자들의 질문은 허용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 얘기만 했다. 한 번은 ‘왜 대통령에 대한 대면보고가 없냐’고 묻자 박 대통령은 “수석 비서관들도 업무에 바쁜데 서면으로 주고받으면 훨씬 효율적이지 않느냐”고 말해 기자들을 실소케 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언론 정책이 그렇다 하더라도 기자는 대통령의 24시간을 독자들에게 소상히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고, 국민은 그것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아사히, 요미우리 등 일본의 주요 신문은 날마다 1면 고정란에 수상의 공식 일정표를 공개한다. 그날그날 수상의 공식 일정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IMF 사태가 대한민국 경제부 기자들의 책임이라면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책임은 정치부 기자들의 책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런 만큼 정치부 기자들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일개 국회의원 신분일 때는 그렇다 하더라도, 한나라당 대표와 대선 후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부터라도 언론은 그 본연의 임무인 감시의 고삐를 늦추지 말았어야 했다. 물론 대통령도 사생활은 보장돼야 하고, 여성일 경우 그것은 더욱 보호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임기를 16개월을 남겨놓은 지금까지도 박근혜 대통령의 일과 이외의 스케줄은 단 한 번도 언론에 소개된 적이 없었다. 독신으로 살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구중심처’인 청와대 안에서 과연 어떻게 저녁시간을 보내는지 의문을 제기한 언론조차 본 적이 없었다. 생일 같은 때 동생들(박근영, 박지만)을 청와대로 불러 친형제·자매끼리 머리 맞대고 밥이라도 한 끼 먹기나 하는 것인지, 오래 전부터 시작했다는 국선도 수련은 청와대 안에서도 사범의 지도를 받는지 아니면 혼자서 하는지 등등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배우자도 없고 가족도 없는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 생활은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국민의 지대한 관심사지만 언론은 국민의 그런 알 권리를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언론은 고유의 직무를 철저히 유기한 셈이었다. 어떤 신문이나 TV가 ‘독신녀 대통령의 청와대 24시’를 르포 형식으로 소개했더라면 박근혜 대통령의 이미지는 지금보다 훨씬 인간적인 모습으로 형성됐을 것이다.
 
사상 유례없는 최순실의 국정농단도 언론이 제 할 일을 똑바로 했더라면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사전에 조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국내 언론은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사후약방문식의 뒷북치기를 습관처럼 되풀이 해오고 있다.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자. 세계 유일의 육군참모총장 출신이 지휘하는 경호실은 최순실의 청와대 무상출입을 정말 모르고 있었을까?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 눈감아 주었을까? 어느 쪽이든 용납할 수도 없고, 용납돼서도 안 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다.

분명한 것은 청와대 경호실조차도 최순실과 그 무리들의 청와대 무상출입을 묵인 또는 방조해 왔고, 그 배후에는 대통령이 있다는 사실이다.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더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일이 몇 년 동안이나 아무렇지도 않게 진행돼 왔음에도 언론은 이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그저 손 놓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 갑자기 당명을 ‘새누리 당’이라고 바꿨을 때, 당의 로고 색깔을 과거 공화당 때부터 사용해 온 파란 하늘색 대신 빨간 색을 선택했을 때, 정부 로고 마크를 갑자기 대한항공 로고처럼 빨강·파랑의 음양구조가 회전하는 듯한 모양으로 바꿨을 때, 언론은 왜 그 배경을 심층 추적, 보도하지 못했는가?
 
청와대 수석들은 물론 각부 장·차관들도 대통령과 얼굴을 맞대고 앉아 현안을 논의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취임 초기부터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건만 그 이면을 파고 든 언론 또한 전혀 없었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무수석으로 있는 1년 동안 대통령과 한 번도 독대해 본 적이 없다고 실토하자 “나도 그랬다”는 사람이 줄지어 나설 때도 언론은 그것을 더 이상 캐보려 하지 않았다.
 
멀리 갈 것도 없다. 2014년 청와대에서 ‘정윤회 문건유출 사건’이 터졌을 때만이라도 언론이 눈을 부릅뜨고 그 이면을 추적, 보도했더라면 사태가 이렇게 암 덩이처럼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박관천 행정관이 “우리나라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말했을 때 언론은 왜 그 이면을 심층 해부하지 못했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근거 없는 유언비어”라고 일축하자 검찰도 언론도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나쳐 버린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 어디 그 뿐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어느 날 갑자기 ‘우주의 기운’ 운운하며 낯선 어휘들을 사용했을 때, 북한이 2년 내에 붕괴할 것이라는 둥의 발언을 했을 때 청와대와 정보기관, 그리고 언론은 왜 그 배경을 의심해 보지  못했는가?

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 중앙일보 손병수 기자는 유일하게 “경제부 기자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며 참회에 가까운 칼럼을 써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서는 정치부 기자들이 뼈를 깎는 참회록을  써야 한다. 이번 사태를 불러 온 엄중한 책임에서 정치부 기자들이야말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위에 열거했듯이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길게는 수십 년, 짧게는 2~3년을 지나오는 동안 적지 않는 징후들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언론들은 그것을 예의주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끝까지 추적, 파헤치지도 못했다.

그것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한국 언론의 태생적인 한계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작금의 극심한 광고난으로 인해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저널리즘 고유의 기능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분석 또한 설득력 있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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