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을 알면서도 묵인했거나 방조한 혐의에서다. 그는 최씨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최순실 씨는 모르는 사람이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실세로 군림했던 김종 전 제2차관이 검찰 조사에서 ‘김기춘 전 실장의 소개로 최씨를 알게 됐다’는 취지의 내용을 진술했지만, 이를 완강히 부인했다. 김종 전 차관이 그런 말을 했는지 믿을 수 없는 데다 만약 그런 말을 했다면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게 김기춘 전 실장의 주장이다. 그러자 김종 전 차관은 애매한 답변을 내놨다. “김기춘 전 실장의 입장과 생각을 존중한다”는 것. 김종 전 차관이 한발 물러선 모습이지만, 김기춘 전 실장이 최씨를 알고 지냈다는 데 무게추가 쏠리고 있다.

◇ 대선 검증팀·김영한 비망록·차움의원에서 최순실 연결고리 발견

실제 김기춘 전 실장은 17대 대선을 앞둔 2006년 무렵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보좌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듬해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경선이 시작되자 캠프 내 법률자문위원장을 맡아 최태민 일가에 대한 의혹 검증을 대응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검찰 수사에 대비해 박근혜 대통령이 변호인으로 선임한 유영하 변호사도 당시 김기춘 전 실장과 손발을 맞췄다는 후문이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방어 전략도 김기춘 전 실장이 총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산 배경이다.

특히 김기춘 전 실장은 현 정부에서 최장수 비서실장으로 재직했다. 출범 첫해인 2013년 8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1년7개월 동안 박근혜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했다. 때문일까.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던 한 인사는 “김기춘 전 실장이 최씨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들도 “최씨가 일을 벌이면 법적·행정적 문제가 없도록 뒷받침한 게 김기춘 전 실장이 아니겠느냐”고 입을 모았다.

공교롭게도 김기춘 전 실장의 재임기간 동안 이해하기 힘든 인사가 적지 않았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과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면직 처리가 대표적 사례다. 두 사람의 후임으로 각각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이 발탁됐다. 현재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최씨의 입김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종덕 전 장관은 최씨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차은택 씨의 대학 은사다. 차씨의 외삼촌은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이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 인사위원장을 겸한다는 점에서 김기춘 전 실장의 책임론도 제기되고 있다.

▲ 여권 일각에서도 김기춘 전 실장과 최순실 씨가 밀접한 관계로 보고 있다. 대선 당시 최태민 일가에 대한 의혹 검증을 대응해온 김기춘 전 실장이 현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로 입성해 최장수 비서실장을 지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뉴시스>
주목할 부분은 김영한 전 수석이 남긴 비망록이다. 그는 지난 8월 간암으로 사망했으나, 서재에 남긴 업무 수첩과 국정원이 작성한 세월호 보고 문건, 휴대전화 기록 등이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김영한 전 수석의 어머니는 JTBC 방송을 통해 “내 아들을 죽인 것은 김기춘”이라고 지목했다. 민정수석에 임명된 이후 김기춘 전 실장과 당시 민정비서관이었던 우병우 전 수석과 불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수석 비서관들은 뒤늦게 조위금을 보냈으나, 조위 명단에 김기춘 전 실장의 이름은 없었다.

뿐만 아니다. JTBC 보도 내용을 종합하면, 김영한 전 수석은 생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증언을 결심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 그가 서재에 보관한 국정원발 자료에는 세월호 참사를 여객선 사고로 규정하고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리거나 여론을 조작하려한 정황이 담겼다. 앞서 김기춘 전 실장은 세월호 참사 이후 국회 운영위 등에 출석해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묻는 질문에 “모른다. 대통령이 경내에 있으면 어디든지 대통령 집무실”이라고 답한 바 있다.

김기춘 전 실장을 둘러싼 의혹은 차움의원에서도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인기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여주인공 ‘길라임’이라는 가명으로 이용한 안티에이징 전문병원이다. 최씨가 병원 설립 당시부터 올해 5월까지 진료를 받으며 박근혜 대통령의 주사제 대리처방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해당 병원에서 김기춘 전 실장은 상담을 받고 일본 차병원에서 부인과 함께 두 세 차례 면역세포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기춘 비서실장은 ‘사생활’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