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마블과 엔씨소프트에서 개발자들의 잇단 사망사고가 일어나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엔씨소프트 홈페이지 캡처>
[시사위크=백승지 기자] 게임업계 개발자들의 잇단 사망 소식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국내 게임 상위사에서 올해만 4명의 개발자가 자살 및 돌연사했다. ‘과로사’로 밝혀진 사건은 한 건도 없지만, 악명 높은 게임업계의 과도한 업무강도와 열악한 처우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거세다.

◇ 늦은 밤 사옥 앞 택시 즐비… 게임업계 씁쓸한 단면

최근 게임업계에는 흉흉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올해만 4명의 게임 개발자 사망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울상을 짓고 있는 업체는 게임업계 2·3위를 다투는 넷마블과 엔씨소프트다. 자사 개발직군 종사자의 연이은 사망사고에 ‘과로사’ 논란까지 겹쳐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달 24일 엔씨소프트 판교 사옥 근처 공원에서 20대 여사원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엔씨소프트 개발직으로 일하던 20대 직원이었다. 이날 오전 사옥 10층에서 추락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투신 원인을 ‘우울증과 업무상 스트레스’에 무게를 두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

넷마블은 올해 7월·10월·11월에 걸쳐 직원 3명이 자살 및 돌연사했다. 이달 21일 자회사인 넷마블 네오의 20대 직원 B씨가 사망했다. 개발자였던 B씨의 정확한 사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지난달에는 사내 비리로 징계를 받은 개발자 C씨가 넷마블 사옥에서 투신자살했다. 올해 7월에는 모바일 게임 ‘길드오브아너’ 그래픽을 담당한 30대 개발자 직원 D씨가 휴가 중 돌연사했다.

공교롭게도 사망한 이들은 모두 개발직군 종사자였다. 개발자의 야근이나 휴일업무는 일상이란 말이 업계정설로 떠도는 만큼, ‘과로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업무강도 및 스트레스를 사망 원인으로 보는 것은 추측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넷마블 관계자 또한 “사인이 과로사로 밝혀진 것은 한 차례도 없다”며 “앞서 7월 발생한 사고는 유족이 이미 과로사가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높아진 업무강도가 종사자들을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게임개발자의 근속기간이 평균 3년이란 점도 가혹한 노동환경을 반증한다는 것이다. 정의당은 7월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대형 게임사 사옥 풍경은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는 직원들을 기다리는 택시로 가득하다”며 “열악한 게임노동환경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 ‘포괄임금제’의 함정… 남은 인력 쥐어짜기?

시민사회단체 노동건강연대가 넷마블의 업무환경을 조사해 논란은 계속된다. 노동건강연대는 최근 넷마블 전현직 직원을 대상으로 업무환경을 자체 조사했다. 이번 달 21일부터 26일까지 구글을 통해 진행한 설문에는 총 540명이 참여했다. 연대는 조만간 자료를 취합 및 분석해 발표할 예정이다.

▲ 노동건강연대의 넷마블 업무환경 조사 설문지.<구글 캡처>
넷마블은 노동건강연대에 강경대응을 예고했다. 넷마블 관계자는 “사망사고와 과로를 연관 지을 근거가 없는데, 해당 연대에선 과로사를 전제로 설문을 진행했다”며 “넷마블 재직 여부와 관련 없이 누구나 참여 및 답변을 제출할 수 있어 허위 정보가 취합될 위험이 크다”고 전했다. 넷마블은 연대 측에 설문조사 결과 발표 중단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낸 상태다.

노동건강연대 관계자는 “취합결과, 설문조사 주관식 답변에는 넷마블의 강도 높은 업무와 열정페이를 호소하는 내부자들의 목소리가 가득했다”며 “노동부가 넷마블 바로 건너편에 있는데,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으니 민간단체라도 나서야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넷마블의 강경대응에는 “직원 건강문제와 직결된 사안을 단순한 기업논리로만 보는 태도를 반성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미 게임업계에서는 업무에 비해 인력은 부족한 구조가 고질적인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게임개발자연대 김환민 사무국장은 “게임사들은 높은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종사자는 거의 충원하지 않아 남은 직원을 쥐어짜는 기형적 구조”라며 “게임사가 도입한 포괄임금제는 야근수당을 따로 안 줘도 추가 근로를 요구할 수 있어, 회사는 최소의 인원으로 최고의 효율을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환민 사무국장은 “특히 게임 출시를 앞두고 개발자들의 야근과 휴일 출근은 관행처럼 이뤄진다”며 “마감일을 맞추기 위한 야근기간을 ‘크런치모드’라고 표현하는데, 회사에서 이를 명령하면 개발자는 거의 ‘계엄령’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고 불만을 제기하지 못하게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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