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순실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한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대한민국 경제권력의 상징적인 존재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고개를 숙였다. 6일 최순실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한 이재용 부회장은 정유라 씨에 대한 특혜지원 등에 대해 “불미스러운 지원”이라고 인정했고, 거듭 “송구하다”고 말했다.

나아가 이 부회장은 그간 재벌과 정치권의 정경유착 고리로 여겨졌던 전경련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정유라에 대한 지원을 결정한 미래전략실에 대해서도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이 있다면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인의 장막’ 속 황태자가 국민의 질문 앞에 나섰던 결과다.

◇ 인의 장막 속 황태자까지 불러낸 ‘국민의 힘’

물론 최순실게이트 관련 진술에는 미진한 점이 많았다. ‘이재용의 삼성’을 만들기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고, 이를 위해 국민연금을 동원한 게 아니냐는 질의에는 철저히 함구하거나 회피했다. 최순실을 언제 알았느냐에 대한 의원들의 계속된 질문에도 “잘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피해갔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정경유착을 끊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실망스럽다”고 중간평가 했다.

그럼에도 얻어낸 것이 적지 않다는 평가다. 최순실게이트에 재벌도 공범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이 부회장은 답변을 하지는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 부회장은 “미비한 점이 있었다. 삼성이 시대와 국민 눈높이에 따라 바꿔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많이 반성하겠다”고 말했다. 언론에 대해서는 “압력을 넣지 않겠다”고도 선언했다. 전 국민이 보는 청문회에서의 발언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삼성그룹의 경영방침에 대격변이 예상된다.

국내 경제권력의 정점에 있는 이 부회장을 국회로 불러내는 데는 국민적 힘이 컸다. 사실 이 부회장은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단골 증인신청 대상자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증인요청이 있을 때마다 새누리당 의원 등 일부 세력의 방어로 성사되지 못했다. 수행원 소수만 대동한 채 완전히 노출되는 국회 청문회를 재벌총수들이 달가워할 리 없다. 그럼에도 재벌총수들이 감히 출석거부를 생각하지 못한 것은 최순실게이트의 진상을 요구하는 국민적 분노 때문이다.

이날 국정조사에 참석한 대기업의 한 대관팀 관계자는 “처음부터 불출석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지금 이 상황에서 불출석 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기업영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업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청문회 답변에 최선의 준비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국정조사의 핵심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최순실·최순득·장시호 등 최씨 일가는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전원 불출석 의사를 보내와 이와 대비됐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 역시 불출석을 통보한 상태다. 이날 회의 도중 우병우 전 수석이 장모인 김장자씨 자택에 머무르고 있다는 첩보가 돌자 위원회가 인력을 급파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김성태 위원장은 동행명령장을 발부해 강제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끝까지 출석을 거부할 경우 강제로 증인석에 앉힐 방법은 사실상 없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국정농단 증인들의 국민무시, 의회무시를 묵과할 수 없다”며 불출석 증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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