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권 대권구조에서 미미한 점유율을 가지고 있던 이재명(왼쪽) 성남시장이 탄핵 정국을 맞아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는 것과 관련해, 그에게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이 보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탄핵정국의 최대 수혜자로 이재명 성남시장이 떠오르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줄곧 자극적인 발언으로 ‘사이다’라는 별명을 얻은 이 시장의 대권주자 지지율이 파죽지세다. 야권의 대권구도가 ‘문재인-안철수’에서 ‘문재인-이재명’으로 재편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재명 현상’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리얼미터가 레이더P 의뢰로 5일부터 9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5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2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은 4주 연속 상승하면서 15% 선을 넘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오차 범위 내 격차로 따라붙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20% 초중반까지 오르며 약 6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특히 이 시장은 1.5%p 오른 16.2%로 4주 연속 상승하면서 2위 반 총장과의 격차도 2.6%p까지 좁혔다.

한국갤럽이 지난 9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6~8일 사흘간 전국 성인 1012명에게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이 시장은 전 달보다 무려 10%p나 오른 18%를 기록하면서 공동 1위를 차지한 문 전 대표와 반 총장을 오차범위 내에서 추격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2%p 떨어진 8%로 4위로 밀려났다.

▲ 탄핵 정국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의 지지율이 파죽지세로 치솟고 있다. <리얼미터>

이 시장은 1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이같은 자신의 상승세에 대해 “저는 더 올라갈 거라고 본다”면서 “흐름과 추세라고 하는 게 있다. 제가 엄청 유능하거나 뛰어나서가 아니라 국민들의 의사를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느냐. 저는 사실은 국민들에게 물어보고 발언한다. 네트워크나 (SNS)망들을 통해서 의견을 다 조회하고 그 다음에 확인된 얘기들을 대체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야권의 텃밭으로 불리는 호남지역에서의 지지율은 더 위협적이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이 시장은 호남에서 문 전 대표를 턱밑까지 추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 전 대표는 21.5%로 호남에서 10주째 1위를 기록했지만 전 주에 비해 5.6%p나 하락했다. 반면 이 시장은 이 기간 5.9%p 상승하며 21.3%를 기록했다. 문 전 대표와 초박빙 차이다. 이 시장의 호남지지율은 전국 권역별 지지율 가운데 가장 높았다.

특히 호남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이 시장을 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는 이들도 많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당시 광주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인제 대세론’을 꺾고 승리했다. 광주 경선에서의 승리는 노 전 대통령의 당선에 기폭제가 됐다. 급격한 호남 지지율 상승세를 맛보고 있는 이 시장의 상황과 맥락이 비슷하다. 호남 내 ‘반문(反문재인)정서’를 고려하면 ‘문재인 대세론’을 꺾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시장의 화법이 노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는 점도 한 몫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대표적인 ‘청문회 스타’였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통일민주당 초선의원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 정권의 정경유착 비리를 규명하기 위해 열린 5공 청문회의 스타로 떠올랐다. 노 전 대통령은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하던 전 전 대통령을 향해 의원 명패를 집어 던지기도 했다.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통일민주당 지도부가 소극적으로 청문회에 임하자 “전두환이가 아직도 너희들 상전이냐”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이 시장도 연일 자극적인 발언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이 시장은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박근혜 탄핵은 단지 범죄자 박근혜에 대한 탄핵만이 아니다”며 “몸통인 새누리당에 대한 탄핵이며, 뿌리인 재벌 체제에 대한 탄핵”이라고 거침없이 비판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일부러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쓰는 것”이라며 “내가 바보가 아닌데 흥분하고 격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 계산된 것이다”라고 했다. ‘흙수저’ 출신으로 인권변호사를 거쳐 선명한 야성을 통해 진보층과 젊은 층의 지지를 이끌어낸 것도 노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주장이다.

다만 이 시장이 제대로 ‘대권후보’로서의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은 향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대중 친화적 화법이나 스타일만으로 대권까지 갈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연일 ‘막말’로 구설수에 오른다는 점과 가족을 둘러싼 각종 논란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시장만의 확실한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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