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이탈리아 헬기업체 아구스타 웨스트랜드(AW)에 대한 특혜 의혹을 반박하는 서울소방 관계자의 모습. < 시사매거진 2580 방송화면 캡처>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일반적으로 물건을 팔 때 ‘자 우리 이런 제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모든 자격증명이 됩니다’ 증명서를 다 제출해놓고 ‘사주십시오’ 하는 게 일반적인 관례이지 않습니까? 저희들은 수리온이 납품한다고 하는 헬기가 어떤 구조인지 어떻게 안전성이 확보되는지 아무 것도 모릅니다.”

얼마 전 서울소방재난본부 119특수구조단(이하 서울소방) 관계자는 한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다목적 헬기 구매사업에서 국산헬기인 수리온을 배제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애초 군용으로 제작된 수리온이 가장 중요한 안전성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실제 수리온은 서울소방이 요구하는 민수용 안전인증(카테고리A)이 없습니다. 군용헬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리온은 의무후송·재난구조·수색 등 목적에 맞게 개조해 사용하는 ‘파생형헬기’입니다. 이번 서울소방의 다목적헬기 구매입찰에 참여하고자 했던 것도 소방헬기로 개조해 충분히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회를 달라는 수리온의 요구에도 서울소방은 엄격했습니다. 서울시민들과 조종사들을 위해서라도 ‘안전한 헬기’를 사야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옳습니다. ‘안전’은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해서는 안 될 절대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서울소방이 자신들의 주장처럼 ‘안전한 헬기’를 구입하기 위한 검증과정에 엄격하고 철저했느냐는 점입니다.

서울소방은 이탈리아 헬기업체인 아구스타 웨스트랜드(현 레오나르도·이하 AW사)와 수의계약 절차를 진행중입니다. 그런데, 입찰과정에서 보여준 서울소방과 AW의 행보는 영 석연찮습니다.

AW는 견적서를 보내달라는 서울소방의 요청에 가격(443억원)만 적어서 달랑 한 장짜리 견적서를 보내옵니다. 서울소방이 재요청하자 “요구하는 가격범위 내에서 가능하다”는 내용과 함께 헬기소개 등을 몇장 덧붙여 제출합니다. 서울소방은 “외국 업체라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해명합니다.

구매하고자 하는 헬기의 규격을 선정하는 회의에도 AW 헬기 조종사와 정비사를 비롯해 관련 인사들이 참여합니다. 입찰규격은 ‘공교롭게도’ AW의 헬기(AW-189)에 꼭 맞도록 설정됩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AW는 입찰에 참여하면서 기본적인 서류조차도 제출하지 않습니다.

지방계약법에 따르면 계약담당자는 입찰공고에 참가자격 제한사항 등을 명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울소방이 입찰공고를 통해 제출해야할 12가지 서류 목록과 함께 “제안서가 영문일 경우 반드시 한글번역본을 첨부할 것(중략) 제출서류 미제출, 한글번역본 미제출, 증빙자료 미흡 등으로 검토가 불가능할 경우 부적합 처리될 수 있다”고 밝힙니다. 하지만 AW는 두 차례에 걸친 입찰에 영문제안서만 제출하고 한글제안서는 아예 첨부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의 입찰 모두 AW만 참여하면서 유찰되긴 했지만, 만약 다른 업체가 입찰에 참여했다면 규정에 따라 AW는 당연히 ‘탈락’ 혹은 ‘부적격처리’ 되는 상황인 것이죠.

취재과정에서 만난 다수의 전문가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우리를 뽑아주십시오’ ‘우리가 적격 업체입니다’라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가 바로 ‘입찰서류’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입찰서류 중 평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제안서’는 숫자 하나, 글자 하나도 어긋남이 없도록 철저히 준비한다고 합니다. 행여 평가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염려해서 입니다. 그런데도 ‘반드시 첨부하라’고 경고한 한글제안서를 버젓이 내지 않는 AW의 행동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AW는 앞서 해경의 다목적헬기 입찰에서도 허위 입찰제안서를 제출한 것은 물론 나머지 증빙서류도 제출하지 않아 우선협상대상자에서 취소된 전력이 있습니다. AW의 못된 습관인걸까요? 아니면 외국업체라 국내 입찰규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발생한 일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배짱 좋게 ‘그래도 되는’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것일까요?

서울소방은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을 진행 중이기 때문에 필수서류인 ‘제안서 한글번역본(한글제안서)’이 누락돼도 다시 보완하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얼핏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AW는 수의계약 과정이 아닌, 이미 입찰과정에서 필수서류를 대부분 누락했습니다. 서울소방은 필수서류가 없어도 AW 헬기가 어떤 구조인지, 안정성이 확보됐는지 이미 확고하게 알고 있었던 걸까요? AW에게만큼은 자신들이 말한 ‘일반적인 관례’를 적용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AW에게만 엄격하지 않은, 오히려 옹호해주는 듯한 서울소방의 태도에 의문이 드는 배경입니다.

서울소방은 두차례에 걸친 입찰이 유찰된 후 수의계약으로 전환하는 단계에서 AW의 자격을 검토했어야 합니다. 수의계약 대상자로 평가할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1차적으로 증빙서류를 검토했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이 단계에서 필수서류가 누락된 사실이 확인됐다면 AW에 서류보완을 지시하고, 그 이후 서류가 완비가 됐을 때 평가위원들을 불러 모아 심사(평가)를 했어야 하는 게 맞는 절차입니다. 그러나 서울소방은 서류가 갖춰졌는지 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채 부랴부랴 평가위원들을 불러 모아 평가를 강행합니다.

가장 중요한 한글제안서가 누락된 것도 이 때 알았다고 합니다. “한글로 작성된 문서가 몇 개 있길래…(한글제안서가 있는 줄 알았다)”는 게 서울소방 관계자의 해명입니다. 340억이 투입되는 사업을 진행하는 ‘공무원’의 답변치고는 참 궁색합니다. ‘안전한 헬기를 사야한다’고 꽤나 강경하게 말하고, 그래서 국산헬기 따위는 접근조차 못하게 했던 서울소방은 이상하게도 그 헬기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만큼은 허술하고 엄격하지 못합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지자체 계약담당 공무원은 “서울소방 좀 더 치밀했더라면 입찰 과정에서 필수서류를 갖추지 못한 AW를 탈락시키고 서류를 구비하게 한 뒤 3차 입찰을 진행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3차 입찰 역시 AW만 참여해 유찰될 것이고, 그러면 그 이후 ‘서류를 구비한’ AW를 상대로 수의계약으로 진행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랬어야 특혜의혹도, 자격논란도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AW의 당당한 배짱도, ‘안전한 헬기를 사겠다’는 서울소방의 진정성도 의심받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조만간 서울소방은 AW와의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혹까지 종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AW의 배짱, 그리고 그런 AW에 대한 서울소방의 남다른 배려. 어쩌면 AW와 서울소방을 둘러싼 의혹은 이제부터가 진짜 ‘검증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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