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 정권의 정경유착을 패러디한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직장생활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은 뭘까. 바로 ‘눈치’다. 눈치껏 알아서 잘하는 직장인이 유능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게 우리사회다. 상사 혹은 선배에게 찾아가 지시사항을 꼬치꼬치 캐물으면 “일일이 다 설명해야 알아듣느냐”는 빈축만 사기 일쑤다. “척하면 착” 알아들으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진리(?)가 꼭 일반 직장인들에게만 통용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고위공직자들이나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정유라의 특혜입학을 지시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경숙 이화여대 전 체육대학장의 말에서 여실히 느껴진다.

15일 최순실게이트 청문회장에서 남궁곤 전 입학처장은 “정확히 (정유라 이름은) 말 안하고 승마 유망주,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있다고 얘기하고 정윤회 딸이 우리 학교에 지원했는지 모르겠다고 (김경숙 전 학장이) 넌지시 말했다”고 폭로했다. 그리고 ‘척하면 착’ 알아듣는 관계자들은 결국 정유라를 이화여대에 특혜입학 시켰다.  

김 전 학장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기자는 이 말을 믿는다. ‘정유라를 합격시키라고 직접적으로 지시한 적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법적인 문제로 비화됐을 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기 위해 불분명하게 넌지시 말했을 것이다. 만약 “지시로 받아들였다”는 증언이 나온다면, “오해”라고 항변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식의 법망 피해가기는 이미 국민들에게 익숙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정유라에게 총 220억 원을 지원하기로 계약했던 삼성전자와 이재용 부사장이 있다. 이재용 부사장은 상속목적으로 국민연금을 움직이기 위해 최순실에게 돈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일일이 다 보고를 받지 않기 때문에” 최순실도 몰랐으며, 돈이 건네진 사실도 추후에 알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즉 밑에 사람들이 ‘알아서’ 했다는 얘기다.

이 말 역시 기자는 믿는다. 이재용 부회장은 넌지시 ‘시그널’만 줬을 것이고 충성심 높은 직원들이 알아서 했을 것이다. 물론 뒤탈이 나면, 이 부회장은 ‘모르쇠’와 ‘오해’로 버틸 것이고. 상황이 심각하다면 ‘도의적 책임’까지 운운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사건에서 이건희 회장이 무죄를 받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복잡한 내용은 걷어내고, 모 기자가 정리한 말을 인용하면 “종업원이 주식을 사장아들에게 불법과 편법으로 증여했는데 사장이 몰랐다는 희한한 사건”이다. 여기에는 검찰의 ‘척하면 착’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도 과연 이들에게 ‘척하면 착’ 해줄 수 있을까. 최순실게이트는 정권비리 차원을 넘어 우리사회 곳곳에 산재한 부조리를 드러냈다. 매주 100만 명씩 모였던 촛불민심은 대한민국에 쌓여왔던 모든 불공정과 적폐에 대한 분노다. ‘모르쇠’와 ‘도의적’이라는 말로 책임을 모면하고자 하는 ‘사회지도층’의 행동은 국민적 분노에 기름만 부을 뿐이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