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근에서 생리대 가격인상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물감을 칠해 붙인 생리대 퍼포먼스가 진행됐다.<뉴시스>

[시사위크=백승지 기자] 누구보다 진땀나는 여름을 보낸 유한킴벌리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생리대 가격 폭리 논란에 깔창생리대 사연까지 연타를 맞았던 유한킴벌리는 최근 회생노력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안타까운 사건이 발단이 됐지만, 그간 우리 사회에서 터부시되던 생리대 관련 논의가 양지로 나와 저소득층 소녀들에 대한 지원의 물꼬가 트인 점은 긍정적 변화라는 평이다.

 

◇ 고개 숙인 유한킴벌리… 3가지 약속 “지켰다”

유한킴벌리는 올 여름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가격을 기존가의 7.5% 인상하는 안으로 여성 소비자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일부 저소득층 소녀들이 생리대 가격부담에 깔창과 수건을 대용품으로 쓴다는 안타까운 사연까지 나오며 유한킴벌리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이른바 ‘깔창생리대’ 사연에 들불처럼 일어난 국민들의 분노는 최규복 유한킴벌리 사장을 국정감사 심판대로 소환하기도 했다.

올 한해 고개를 숙였던 유한킴벌리는 최근 회생노력에 주력하고 있다. 기업 가치 제고뿐만 아니라 ‘깔창생리대’로 시작된 저소득청 청소년에 대한 생리대 지원 등 실질적인 도움에 집중하고 있다.

 

▲ 유한킴벌리 저가형 생리대 '좋은느낌-순수'.<시사위크>

유한킴벌리는 올 여름 국민 앞에서 한 3가지 약속을 연내 이행하는데 성공했다. ▲기존 주요제품의 정상 출고 ▲저소득층 생리대 150만 패드 지원 ▲저가형 생리대 개발 및 출시 등이다. 이 중 가장 본질적인 대책으로 꼽히는 것은 ‘저가형 생리대’다. 생리대 가격의 정상화를 통해 저소득층 소녀들의 생리대 가격 부담을 크게 낮출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유한킴벌리는 약속대로 지난달 저가형 생리대 ‘좋은느낌-순수’를 출시했다. 공급가를 기존 가격 대비 30~40% 낮췄다. 19일 기자가 직접 찾아간 한 대형마트의 생리대 코너에선 해당 제품이 주요 매대에 진열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형’과 ‘대형’ 2종으로 출시된 이 제품은 패드 개당가격이 각각 ▲144원 ▲163원으로 전시된 제품 중 가장 저렴했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홈플러스, 이마트, 롯데슈퍼 등 주요 유통3사 시중 매장에 입점을 마무리해 전국 유통 경로의 75% 이상을 커버할 수 있을 전망”이라며 “아직 공급 초기라 정확한 판매량을 산정하긴 어렵지만, 생리대 구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외계층 등에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 정부 예산편성에 기부금 확대… ‘십시일반’

유한킴벌리로 시작된 생리대 가격 논란은 업계 전체에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업계 1위인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 인상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자 업계 2·3위인 LG유니참과 한국P&G는 여성과 저소득층 소녀를 위한 기부 확대 의지를 천명하고 나섰다.

특히 LG유니참의 기부금 액수 확대는 눈에 띄는 수준이다.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 4년간 기부 총액이 1460만원에 불과하던 LG유니참은 최근 미혼모 시설을 대상으로 한 1억3000만원 규모의 생리대 지원을 결정했다. 지난해 대비 약 3000% 늘어난 수치다.

정부도 생리대 지원에 발 벗고 나섰다. 예산 3억1000만원을 집행해 청소년 29만명에 3개월 치 생리대를 몰아서 지급했다. 이 과정에서 생리대를 ‘방문수령’하게 하고 개인신상을 상세히 적어야하는 등 민감한 사춘기 청소년에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일부 지자체가 ‘택배수령’ 방식을 자체 추진하는 등 생리대 지원사업도 점차 발전하는 양상을 보였다.

 

▲ 전주시청에서 저소득층 소녀들에게 보낼 생리대 등 여성용품을 택배박스에 담고 있다.<뉴시스>

저소득 여성 청소년에 대한 정부의 생리대 지원사업은 내년에도 계속된다. 애초에 복지부와 여가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는 관련 예산이 빠져있었다. ‘제2의 깔창생리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최근 복지부는 관련 사업비 30억원을 내년도 예산안에 추가로 책정했다.

 

생리대 가격 논란은 우리 사회의 젠더의식에도 의미 있는 반향을 불러왔다.

7월 박삼용 새누리당 의원이 정례회의에서 “생리대는 거북하니 위생대로 표현하자”는 발언을 하자 시민들은 곧장 전근대적 남성중심의 성의식에 규탄여론을 형성했다. 깔창생리대로 촉발된 논란이 여성인권 전반에 대한 논의로 활발하게 뻗어나가면서, 저소득층 소녀들의 상처에도 새살이 돋아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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