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일 오전 광주 수도사 주지인 청호 스님이 서울 새문안로 금호아시아나 빌딩 앞에서 '이천-오산 고속도로' 개통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절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독자 제공>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영하 8도의 동장군이 기세를 떨친 28일 오전 9시경. 서울 광화문 인근의 빌딩 숲 한복판인 새문안로에 스님 한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파에도 아랑 곳 않고 법복 한 벌에 의지한 채 한 고층 건물 앞에 기립한 그는 광주 수도사의 주지인 청호 스님이다.

이날 청호 스님이 한파의 날씨에 도시 행차를 감행한 건, 존폐 기로에 놓인 절을 구하기 위해서다. 스님이 주지로 있는 경기도 광주의 수도사 도량 앞 80m 지점에 고속도로가 깔리게 되면서 폐사 위기의 처했기 때문이다.

문제의 고속도로란 ‘이천-오산 구간 고속도로’를 말한다. 수도권 제 2순환고속도로의 일부로 경기도 광주시와 동탄 2신도시가 들어서는 화성시를 연결하는 도로다. 22일 국토부의 승인을 받아 2021년 12월 개통을 목표로 조만간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연장 31.2㎞의 4차로로 사업비는 7642억원이 집행됐다.

한파 속에 스님이 1인 시위를 감행하기로 한 곳은 바로 시공사인 금호건설 본사가 위치한 금호아시아나 빌딩 정문 앞이다.

청호 스님의 구체적인 사연은 최근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 잘 나타나 있다.  당시 그는  “고속도로가 건설되면 차량의 소음 피해는 물론, 사찰의 조망과 경관이 훼손되고 대기 오염 등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며 “문화유산이란 한번 훼손되면 복원이 어렵다. 수행환경도 마찬가지다. 망가지면 본래의 모습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고 말했다.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으나, 수도사는 고려시대 때 창건된 유서 깊은 절이다. 조선시대에 폐사 위기에 처했다, 철종 10년 당시 영의정이던 김좌근이 중창했다. 오늘날 지역의 포교와 수행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수도사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08호로 지정된 목조보살좌상을 소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청호 스님이 바라는 건 사업단의 성의 있는 모습이다. 역사적 가치가 분명한 절이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되는 대형 공사로 인해 생사의 기로에 놓였지만, 관련 기관들은 이에 아랑곳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서다. 스님은 “한국전력과 서울국토관리청, 시공사인 금호건설 측에 여러 차례 대책마련을 촉구했지만, 제대로 된 협의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성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스님은 관계 당국과 시공업체의 납득할 만한 대책이 나올 때까지 1인 시위를 멈추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혹한 속 그의 외로운 싸움은 계속될 전망이다.

한편 청호 스님의 주장과 관련 시공사인 금호건설 측은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금호건설 관계자는 이천-오산 고속도로는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고 최근 국토부의 승인까지 받아 적합한 절차를 거쳐 사업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수도사는 법적 보상을 해줘야 할 의무가 없는 곳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다만 앞으로 수도사 측과 대화를 시도해 협의 점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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