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청문회 답변과 전면 배치되는 사실 및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해가 바뀌었지만 정국은 여전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뒤덮여있다. 파문의 신호탄이었던 태블릿PC 보도가 어느덧 두 달 전 일이다. 그 사이 최순실 등 많은 관계자들이 구속되고, 대규모 청문회가 열리고, 대통령이 탄핵 소추됐다. 하지만 새로운 소식과 충격적인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특히 진실의 퍼즐 조각이 하나 둘 씩 맞춰지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관계자들의 위증 및 입맞추기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청문회 도중 위증이 밝혀지는 일도 있었다. 장관은 물론 청와대 고위간부, 교수, 군인 등 우리 사회 ‘지도층’이라 불릴만한 인물들이 ‘위증’이란 또 하나의 혐의 앞에 풍전등화 처지가 됐다.

◇ “최순실 몰랐다”던 이재용, 진실일까

이번 사태의 핵심인물 중 한 명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해 12월 6일 열린 청문회의 주인공이었다.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았고, 가장 많은 답변을 했다. 그리고 가장 많은 논란을 남겼다.

당시 청문회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한결같이 ‘저자세’를 취했다. 쉴 새 없이 사과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알맹이는 없었다. ‘세계 일류 기업’ 삼성의 리더다운 명확한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런 이재용 부회장을 향해 “‘돌려막기 재용’이란 별명을 주겠다. ‘모르겠다’, ‘기억 안 난다’, ‘제가 부족하다’, ‘앞으로 잘 하겠다’ 이 네 가지 대답으로 종일 돌려막고 있다. 오늘 대답하는 거로는 박근혜 대통령 수준이다. 그러다가 삼성 직원들에게 탄핵받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자신의 경영 승계를 위해 최순실과 정유라를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을 통해 국민연금을 움직이고, 그 대가로 여러 방법을 통해 뇌물을 건넸다는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와 관련해 현재 출국금지 조치를 받은 상태이며, 특검 수사를 목전에 두고 있다.

청문회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일관되게 최순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불거진 뒤에야 보고를 받았다는 주장이었다.

도종환 의원(더불어민주당) : 이렇게 (최순실을) 지원한다는 것을 누구에게 보고받았습니까?

이재용 부회장 : 제가요? 나중에 문제가 되고 나서 알았습니다.

도종환 의원 : 지원할 때는 보고 안 받았어요? 사실대로 말씀하셔야 돼요. 위증하면 안 됩니다. 특검에서 또 조사받을 거에요. 장충기 사장은 안종범을 만났습니까?

이재용 부회장 : 제가 그건 모르겠습니다

도종환 의원 : 사실대로 말씀하셔야 돼요.

이재용 부회장 : 모르겠습니다.

-지난해 12월 6일 청문회 中

또한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자신의 승계와 무관하며, 합병을 위해 국민연금을 동원한 일이 없다고 밝혔다. 

박영선 의원(더불어 민주당) : 삼성이 국민들이 알뜰살뜰 모은 국민연금을 이용해서 본인의 승계에 지금 이용하고 있는 그 현장을 참고인께서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왜 삼성은 이런 식으로 협박을 합니까?

이재용 부회장 : 송구스럽지만 양사의 합병이 무슨 제 승계나 이런 쪽과는 관계가 없고 제가 모자라다고 꾸짖어 주시고 앞으로 더 잘하라고 채찍질을 하시면 제가 받겠습니다.

하지만 저희 삼성 계열사들에 국민연금에서 투자를 해 주셔서 지금 제일 큰 투자자이고 제일 큰 투자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일 높은 수익도 저희가 올린 것으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임직원들이 열심히 뛴 것 같습니다. 저희가 신문광고도 했고요. 저희가 입장 표명은 협상의 타당성이라든지 제가 우리 한화증권의 세부사항은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쪽으로 하시는 거는 조금 한번 재고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난해 12월 6일 청문회 中

하지만 청문회 이후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는 사실 및 정황은 이재용 부회장의 당시 답변과 전면 배치된다.

먼저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의결이 비정상적인 절차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특검 1호’로 구속됐고, 홍완선 전 본부장은 “외압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최순실-박근혜-국민연금-이재용’으로 이어지는 ‘뇌물죄’ 고리의 한 부분이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최순실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수차례 강조한 이재용 부회장의 말 역시 위증 논란에 휩싸였다. 특검은 삼성의 최순실 지원 직후 이재용 부회장이 이를 보고 받은 증거 및 증언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최순실 지원의 실무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 박상진 사장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는 ‘스모킹 건’이 될 전망이다.

만약 위증이 사실로 드러나고, ‘진짜 진실’이 모습을 나타낸다면 이재용 부회장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당장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위증죄는 제쳐두고라도, 위증의 확인은 곧 뇌물죄의 입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국민을 향해 밝혔던 사과와 반성, 약속 역시 모두 거짓이 되고, 더 나아가 온 국민을 농락한 것이 된다.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 모두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검의 시선은 이제 이재용 부회장에게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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