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해 살처분 된 닭을 경기 화성의 한 양계농장에서 관계자들이 트럭에 옮기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AI의 공포가 축산 농가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육계 산업의 기업 독식 구조가 도마에 올랐다. 육계 농가 대부분이 축산 기업들의 하청 업체로 전락하면서, 국민의 혈세인 살처분 보상금이 기업들의 전유물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 국가적 재앙 된 AI ‘공포’… 기업들은 ‘유유자적’

축산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2003년 최초 발생 이후 이제는 연례행사가 돼버린 AI(조류인플루엔자)의 공포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덩달아 정부와 방역당국의 늑장대처도 재연되는 모습이다. 도돌이표처럼 방역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형국이다.

H5N6형 고병원성 AI 발생 50일 만에 살처분 된 가금류는 이미 3000만 마리를 넘어섰다. 이는 국내 전체 사육 가금류(1억6525만 마리)의 18.3%에 해당하는 규모다. 10마리 가운데 2마리가 비명횡사한 셈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경제로 이어지고 있다. 라면·주류·과자 등 장바구니 물가의 도미노 인상과 맞물려, 유용한 식재료인 계란값 마저 올라 국민들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하고 있다. 기존 5000원대이던 계란 한 판의 가격이 최근 1만원을 넘어서면서 “장보기 겁난다”는 주부들의 아우성이 빗발치고 있다.

AI가 국가적 재앙으로 번지는 가운데서도 축산 대기업들은 별다른 손해를 입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의 주 무대인 육계와 오리 산업이 더 이상 AI의 안전지대가 아닌데도 말이다.

본래 외부 노출이 적은 육계(식용이 목적인 닭)는 AI에 안전한 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란계(달걀 생산이 목적인 닭)에 비해서 말이다. 하지만 최근 이 두 영역 간 장벽은 허물어지는 추세다. 최근 육계에서도 AI 감염 사례가 나오면서 가금 산업 전반의 위험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육계 산업에 주력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이 같은 비상시국에도 별다른 동요 없이 차분한 모습이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설령 AI가 육계에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한들, 축산업에 종사하는 기업들에게는 두둑한 보상이 보장됐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육계와 오리 분야에 종사하는 농가 대부분이 대기업에 종속돼 있다 보니, 살처분 보상금(국비80%·지방비 20%) 대부분이 기업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게끔 돼 있다는 설명이다.

◇ 육계 농가 10곳 중 9곳 ‘하청’… 보상금은 기업이 ‘독식’

6일 김현권 의원(더불어 민주당)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는 자료에 따르면 국내 육계와 오리 농가의 계열화율은 각각 91.4%와 92.4%(2015년 12월 기준)에 이른다. 계열화율이란 기업과 계약을 맺은 위탁농가의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육계 농가의 10곳 가운데 9곳이 기업들의 ‘하청업체’란 뜻이다.

실제 김 의원실에 따르면 2014년 AI대란 당시 국내 축산 기업들이 받은 보상금은 총 372억7300만원으로 집계됐다. 그해 전체 보상금(1271억9500만원)의 상당 부분이 기업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하림(12억5300만원), 올품(24억3500만원) 등 대형업체들이 독식했다. 상위 14개 업체들이 가져가 돈만 259억1500만원이었다. 반면 육계와 오리 위탁 농가들은 146억원9500만원을 받아 기업들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WTO 체제 출범 후 농축산 분야에서의 정부 정책도 생산비를 낮추고 기업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다 보니 일부 기업이 육계 산업을 독식하는 구조가 됐다”면서 “앞으로는 기업 지원보다는 축산물의 질을 성장시킬 수 있는 동물 복지에 중점을 두는 쪽으로 국가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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