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WHO가 가공육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뉴시스>
[시사위크=백승지 기자] 육가공식품 발암물질 논란이 촉발된 지 1년이 지났지만 국내 업체들의 자정노력은 소극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위험성을 알리는 논문이 끊임없이 발표되고 있으나, 관련 법망에는 여전히 구멍이 뚫려있다. 정부의 무관심 속에 업체들도 기존 제품을 그대로 생산하고 있어 밥상 위 안전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지적이다.

◇ WHO “가공육은 1급 발암물질”… 업계 ‘나 몰라라’

2일 인제대 환경공학과 박흥재 교수팀이 햄·소시지 등 육가공식품을 직화 할 경우 발암성 물질인 PAH(다환방향족탄화수소류)가 최고 600배까지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PAH는 내분비계 장애물질이자 발암 가능 물질이다. 가장 잘 알려진 PAH에는 1군 발암물질로 분류된 벤조피렌이 있다.

시중 유통되는 육가공품 13종 중 5종에서는 가열 조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PAH가 검출된다. g당 0.6~7.2ng(나노그램)이 첨가됐다. 프라이팬을 이용해 가열할 경우 4개 제품에서 g당 최대 22.1ng이 나온다. 직화의 경우 최대 367.8ng까지 치솟았다.

박 교수팀은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육가공품에 대한 PAH 선행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라며 “PAH는 식품 섭취를 통해 대부분 인체에 유입되므로 원재료뿐만 아니라 식품의 조리 과정 중 생성되는 양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햄과 소시지 등 육가공품의 발암물질 논란은 사실 해묵은 논쟁이다. 2015년 10월 세계보건기구(WHO)가 관련 논문을 발표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육가공품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 대두됐다. 당시 WHO는 햄과 소시지 등 가공육을 담배·비소와 같은 ‘1급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매일 50g의 가공육을 먹으면 대장암에 걸릴 위험이 18% 높아진다고 발표했다.

소비자 불안감이 들불처럼 일었지만, 국내 식품업체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특히 가공육 업계 선두업체인 CJ제일제당과 롯데푸드의 선제적 조치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됐지만, 국내 업체들은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롯데푸드 관계자는 “식약처 등 정부에서 관련 가이드라인과 규정이 나온다면 지키겠지만, 지금은 아무런 규정도 없다”며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의 육가공제품 소비량도 WHO가 말한 기준치를 밑도는 수준이라, 걱정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당시 WHO의 발암물질 발표에 '햇빛'이 같은 1급 발암요소로 제시되는 등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된다"며 "이후 자체적으로 발암물질 관련 조사를 진행하진 않았고, 다만 고객들의 불안감이 고조되는 것을 고려해 천연첨가물 제품을 늘렸다"고 밝혔다.

◇ TF 꾸리겠다던 식약처 “WHO 최종보고서만 기다려”

▲ 2015년 11월 2일 손문기 식약처장이 가공육 적정 섭취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뉴시스>
2015년 논란 당시에도 업계는 한국인의 가공육 소비량이 적어 문제될 게 없다며 여론 진화에만 초점을 맞췄다. WHO의 발표대로 하루에 50g씩 섭취하려면, 제일 크기가 작은 200g 제품 한 통의 4분에 1을 매일 먹어야 우려할 수준에 이른다는 주장이다.

가공육 섭취를 두고 소비자 혼란이 이어졌지만,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당시 식약처는 WHO 발표 직후 자체적 평가를 위한 테스크포스(TF)팀을 꾸리겠다고 밝혔다. 2016년 하반기부터 섭취 가이드라인을 단계적으로 제시하겠다며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2016년 하반기가 한참 지난 지금에도 식약처의 후속조치는 들려오지 않는다. 식약처 관계자는 “WHO가 당시 발표한 것은 요약본이었는데, 이후 어떤 이유에선지 종합보고서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며 “지금은 WHO의 최종보고서가 공개되기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육가공품 시장의 발암물질 생성 논란은 ‘소문만 무성한’ 상태다. 정부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으면서, 법령 제정 및 안전성 조사도 전부 비껴가 있다. 국내 업체들은 소비자 우려를 고려해 합성첨가물을 제외한 프리미엄 제품라인의 확충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흔히 ‘햄 색깔’을 내는데 쓰이는 발암우려 물질 ‘아질산나트륨’은 여전히 다수의 제품에 첨가되고 있어, 밥상 위 안전이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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