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8월 15일 특별사면으로 출소하는 최태원 회장의 모습.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전방위적 후폭풍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재계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이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최태원 회장 사면과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 최태원 회장의 숙제는 무엇이었‘쓰까’

<한겨레>는 지난 11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입수한 최태원 회장 관련 녹음 파일에 대해 보도했다. 김영태 SK그룹 부회장(당시 커뮤니케이션 위원장)이 2015년 8월 10일 최태원 회장을 면회하며 나눈 대화에서 수상한 정황이 포착됐다는 것이다.

당시 김영태 부회장이 최태원 회장에게 한 말은 언뜻 이해가 쉽지 않다. “왕 회장이 귀국을 결정했다. 우리 짐도 많아졌다. 분명하게 숙제를 줬다”고 말했다. 대화 내용이 기록되는 면회라는 점을 감안해 일종의 ‘암호’를 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후상황 등을 고려해보면 해석은 크게 어렵지 않아 보인다. ‘왕 회장’은 사면권을 가진 박근혜 대통령, ‘귀국’은 최태원 회장의 사면, ‘우리’는 SK그룹으로 풀이 된다.

문제는 ‘숙제’다. 문맥 상 사면에 따른 대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SK그룹의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이 이 ‘숙제’와 연관이 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만약 관련성이 드러난다면 이는 명백한 ‘사면 거래’가 되고, 곧장 뇌물죄가 성립된다.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이 얽힌 ‘승계 민원’과 더불어 상당한 충격과 후폭풍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의혹이다.

◇ 최태원 회장 최측근이 대통령과 특별사면 논의?

좀 더 구체적으로 의혹을 정리해보자.

우선 시점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수천억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2014년 2월 징역 4년을 확정 받았다. 이후 수감생활을 이어간 최태원 회장은 2015년 8월 10일 김영태 부회장으로부터 특별사면 결정 소식을 전해 들었고, 실제 자신이 포함된 특별사면 명단은 13일에 발표됐다. 최태원 회장은 그렇게 2015년 8월 15일 특별사면을 받고 출소했다.

이에 앞서 김창근 SK그룹 수펙스 의장은 2015년 7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을 독대했다. 이 자리에서 최태원 회장 특별사면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재단 모금에 직접 나선 혐의를 받고 있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무수석으로부터 특검이 확보한 진술이다.

최태원 회장이 특별사면으로 출소한 직후 SK하이닉스는 46조에 달하는 대대적인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SK그룹은 ‘전역연기 장병 채용’에 나서기도 했다.

이후 SK하이닉스는 2015년 10월 미르재단에 68억원을 출연했다. 2016년 1월에는 SK가 K스포츠재단에 43억원을 냈다. 총 111억원으로 삼성, 현대차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자금을 출연한 SK그룹이다.

▲ 최태원 회장이 출소 열흘 뒤인 2015년 8월 25일,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SK하이닉스 M14 반도체공장 준공 및 미래비전 선포식’에 참석한 모습. <뉴시스>
◇ ‘사후 뇌물’ 가능성도 배제 못 해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먼저 특별사면 과정이 적절했는지 여부다. 기본적으로 특혜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최태원 회장은 복역 당시 17개월 동안 1778회의 면회를 한 것으로 나타나 ‘특혜 면회’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최측근이 사면권을 가진 대통령을 만나 자신의 특별사면을 논의하고, 또 자신의 특별사면 확정을 미리 접할 수 있는 것은 최태원 회장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가성 여부다. 김영태 부회장이 언급한 ‘숙제’가 무엇을 의미하느냐와 같다. 만약 그 숙제가 SK하이닉스의 대대적인 투자였다면, 특별사면 이유인 ‘경제활성화’에 부합한다. 하지만 두 재단 출연금에 특별사면 대가 성격이 담겨있다면, 돈으로 면죄부를 산 ‘사면 거래’가 성립하게 된다.

특히, 특별사면보다 재단 출연이 뒤에 이뤄진 것에 대해서는 ‘사후 뇌물죄’로 볼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그룹의 정유라 지원 역시 합병 이후에 이뤄졌다.

SK그룹 측은 ‘숙제’의 의미에 대해 “경제살리기 차원에서 진행된 특별사면인 만큼, SK그룹이 투자와 채용에 적극 나서야 하는 상황과 책임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특별사면과 재단설립은 시점이 다르다”며 무관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지난해 12월 열린 청문회에서 “(재단 출연금은) 기업별로 할당을 받아 할당된 액수만큼 낸 것으로 사후에 보고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최태원 회장의 ‘사면 거래’ 의혹은 이재용 부회장 관련 의혹에 비해 반론의 여지가 많다. 그만큼 의혹 규명이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과 SK그룹이 느끼는 압박감은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그룹 못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영수 특검은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재직하던 2003년, 최태원 회장을 1조5000억원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이로 인해 당시 최태원 회장은 7개월의 수감생활을 했다. 이후 2008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최태원 회장은 곧장 2008년 8·15 특별사면으로 굴레를 떨쳐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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