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첫 운행을 시작한 SRT의 모습.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초대형 국책사업인 수서발 고속철도를 둘러싼 검은 의혹들이 서서히 베일을 벗는 모양새다. 국가재정이 낭비된 정황을 포착한 검찰이 관련 수사에 칼을 빼든지 3달 만에 그 결과가 나왔다. 공법을 속여 수백억원을 탈취한 혐의가 드러난 두산건설 직원들은 법정에 서게 됐다.

◇ 공법 어기고 서류조작까지… 현장소장 등 무더기 기소

12일 수서발 고속철도(SRT) 비리를 수사 중인 수원지검 성남지청의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검찰에 따르면 SRT 공사 일부 구간에서 혈세가 낭비됐다는 그간의 의혹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검찰은 발표 자료를 통해 “최신 굴착공법으로 계약해 놓고 실제로는 값싼 발파 공법을 이용해 터널을 뚫어 182억원을 편취한 시공사 및 하도급 관계자 등 총 26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SRT가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오른 건 개통이 임박했던 지난해 10월에서다. 총 사업비 3조가 투입된 SRT 특정 구간에서 시공사들이 부당 차익을 챙긴 정황이 드러나 검찰 수사의 막이 올랐다.

수사의 신호탄은 국내 또 다른 대형건설사(이하 A건설사)다. 총 12개 공구 가운데 발파 공법을 위반한 혐의가 드러난 공구의 시공을 맡은 A건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며칠 뒤 수사망은 두산건설로 빠르게 확대됐다. 같은 혐의로 2공구(수정 둔전∼분당 금곡, 약 8.2㎞) 시공사인 두산건설의 관계자들이 구속됐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두산건설이 시공한 2공구에서는 조직적인 비리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발주처인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시공사는 물론, 하도급사와 감리업체 그리고 설계업체까지 공사 이해관계자 26명이 무더기로 연루돼 있었다.

두산건설은 계약서상 기재된 발파방식을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당초 약속된 ‘수퍼웨지’ 대신 ‘화약발파’ 방식이라는 손쉬운 길을 선택했다. 수퍼웨지는 대형 드릴을 사용해 굴착하는 최신 공법이다. 진동과 소음이 비교적 덜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공기가 늘어나고 4~5배 많은 비용 든다는 단점이 있다.

이들은 이 같은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서류에도 손을 댔다. 감리업체 소속 감리원들은 화약발파로 굴착됐다는 걸 알면서도, 계약서대로 작업이 진행됐다는 허위 검측서류를 작성해 시설공단에 제출했다. 또 두산건설과 시설공단 설계담당자 등은 화약발파로 굴착이 완료된 구간을 마치 고가의 수퍼웨지로 굴착한 것으로 설계를 변경한 것으로 드러났다.

◇ 발주‧시공‧감리 등 ‘짬짜미’… 혈세 182억원 ‘꿀꺽’

이 과정에서 금품이 오간 사실도 검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두산건설과 하도급업체에 공사 편의를 제공한 대가로 시설공단 직원들은 수천만의 뒷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값비싼 화학발파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한 두산건설은 11억원의 부당 차익을 챙겼다. 또 이 회사 현장소장과 하도급사 관계자 및 감리단장 등은 182억원을 편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대형 국책사업에서 국가재정을 낭비하는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비리의 실체를 규멍하고 관련자들을 엄단했다”면서 “앞으로도 국가재정을 낭비하는 대형 국책사업에 관한 비리 수사를 지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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