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그룹(회장 김준기)이 대우일렉트로닉스(이하 대우일렉)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만약 동부그룹이 대우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하게 된다면 김준기 회장 입장에선 ‘종합전자회사’에 대한 30년 꿈의 발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업계에선 우려의 시각도 제기된다. 그룹의 부채비율이 높은 탓에 자칫 '승자의 저주'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대우일렉트로닉스가 오랜 매각작업 끝에 새주인을 만났다. '동부그룹'이 그 주인공. 지난달 23일 대우일렉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과 자산관리공사(캠코) 등은 "대우일렉 매각 본입찰에 참가한 3곳 중 동부그룹과 협상을 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별다른 변수만 없다면 대우일렉은 동부그룹의 품에 안기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입장에선 ‘종합전자회사’에 대한 30년 꿈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실제 대우일렉 우선협상대상자 발표 후 동부그룹 안팎에서는 “김 회장의 오랜 꿈에 다가섰다”는 평가가 터져나왔다.

김 회장은 지난 1983년 실리콘 웨이퍼 제조회사 ‘코실(현 LG실트론)’을 설립한 때부터 삼성, LG와 같은 종합전자회사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실' 설립으로 전자사업에 발을 담근 뒤 종합전자회사에 다가가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

지난 1997년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동부전자(현 동부하이텍)을 설립했고, 2002년에는 아남반도체를 인수하며 동부하이텍을 강화했다. 또 2010년 전자재료와 IT부문을 통합해 동부CNI를 합병했고, 동부LED와 동부로봇 등 전자부품 회사를 거느리며 끊임없이 전자 분야 사업영역을 넓혔다.

그러나 이들 사업은 대부분 전자부품 제조업이다. 종합전자회사를 이루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 동부그룹이 전자 완제품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선 ‘대우일렉’이 반드시 필요했다. 동부하이텍과 동부제철이 가전제품용 반도체, 냉연강판 등을 제조하면 대우일렉이 이들 부품으로 완제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완제품은 동부그룹의 물류망인 동부고속이나 동부택배를 이용해 유통이 가능하다. 이번 대우일렉 인수를 통해 동부그룹 계열사와의 ‘시너지 효과’가 극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은 이유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인수를 위해 과도한 비용을 치르게 되면 동부그룹 전체가 위험에 빠지게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소위 '승자의 저주'가 제기된다.

대우일렉 매각 본입찰에서 동부그룹은 3,700억원대의 높은 인수가격을 제시했다. 함께 입찰에 참여한 삼라마이더스(SM)그룹과 스웨덴 일렉트로룩스는 각각 3,500억원대, 2,900억원대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그룹은 인수금액 3,700억원 중 51%인 1,887억원 가량을 투자하고 49%의 지분은 재무적투자자(FI)가 맡는 방식으로 컨소시엄을 형성했다. 이번 인수의 FI는 KTB프라이빗에쿼티(PE)와 국내 사모펀드인 CXC PE 등으로 동부그룹이 외부 차입 없이 대우일렉을 인수하기 위해 그동안 FI 영입에 주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본계약 체결 전이기 때문에 향후 인수를 담당할 계열사와 계열사들이 부담할 인수 금액 등 구체적인 계약 내용이 정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수를 위한 ‘이행보증금’을 내기 위해 동부그룹이 김 회장으로부터 135억원을 차입했다.

문제는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이 썩 좋지 않다는 점이다. 계열사들의 곳간도 넉넉치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이번 인수를 추진하는 것이 걱정을 낳고 있다.

실제 동부그룹 상장 계열사 중 동부제철, 동부하이텍, 동부건설 등 상당수의 주요 계열사가 부진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이들 기업의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동부건설 1,695억4,804만원, 동부하이텍 979억4,658만원, 동부제철 2,168억9,561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더구나 동부그룹의 부채비율은 370%에 달한다.

이렇듯 탄탄하지 못한 재무구조에도 불구하고 동부그룹은 최근 1년 동안에만 네오세미테크 등 6개의 기업을 인수 혹은 설립했다. 여기에 대우일렉까지 더하면 재무제표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재계와 금융권 일각에서는 동부그룹의 투자확대가 ‘승자의 저주’를 부르는 것은 아닌지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동부그룹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외부의 우려는 동부그룹을 잘 모르는 호사가들이 하는 말"이라며 "외부차입금을 쓰지 않고 자체비용으로 인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무구조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더구나 매출액이 30조원이 넘는 동부그룹에서 1,800억원대 인수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이어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상태라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은 이해한다"면서 "은행 측은 약정 이행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입장일 뿐, 인수에 관해 의견을 내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대우일렉트로닉스(이하 대우일렉)는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등을 주요사업으로 영위하며 완제품을 판매하는 대표적인 전자기업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 시장점유율 30%를 차지하며 ‘탱크주의’로 불렸던 대우일렉은 1999년 ‘대우사태’로 그룹에서 분리돼 워크아웃에 들어간 뒤 지난 13여년 동안 협상결렬을 되풀이하며 M&A 시장의 ‘골칫거리’로 불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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