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특검이 16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16일 결국 청구됐다. 이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오는 18일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이재용 부회장이 국회 위증 혐의도 받고 있는 점, 여러 은폐시도가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난 점 등을 고려하면 실제 구속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다면, 삼성그룹은 물론 재계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될 전망이다. 할아버지 이병철 선대회장과 아버지 이건희 회장은 구속영장이 청구된 적이 없다. 또한 구속은 유죄 및 실형을 선고받고 징역을 살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기도 하다.

◇ 삼성 “특검 결정 이해하기 힘들어”

설마 했던 초유의 사태가 눈앞으로 성큼 다가오자 삼성은 당황스런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삼성은 이날 공식입장을 통해 특검의 결정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간 이렇다 할 입장표명 없이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던 것과 상반된다. 삼성은 “대가를 바라고 지원한 일은 결코 없다. 특히, 합병이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특검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법원에서 잘 판단해 주시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경총은 이날 “이건희 회장이 3년째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마저 구속된다면 삼성그룹은 심각한 경영공백에 처하게 될 것”이라며 “경영자가 수사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수십 년 간 쌓아온 브랜드 가치가 하락됨은 물론, 기업의 존망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구속수사로 이어진다면 해당 기업은 물론, 우리 경제의 국제신인도가 크게 추락해 국부 훼손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의혹이 제기된 배경에는 정치적 강요 분위기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측면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며 “이재용 부회장의 범죄혐의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속수사는 신중히 검토돼야 한다. 더욱이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면 불구속 수사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강조했다.

▲ 지난 12일, 이재용 부회장이 특검에 소환되자 그의 구속을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몰려 들었다.
◇ 이재용 없으면 삼성 망한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환영하고, 구속 수사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먼저 삼성과 경총이 밝힌 구속의 불합당성은 사실관계부터 다르다. 삼성은 대가를 바란 지원이 아니었다고 밝혔지만, 이미 여러 지점에서 대가성이 입증됐다. 국민연금이 손해를 감수하고 삼성 합병에 찬성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또한 국민연금의 삼성 합병 찬성 의사결정 과정과 삼성의 최순실 지원은 개별적으로 보면 수상한 점투성이지만, 함께 보면 퍼즐이 맞아 떨어진다.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 구속을 앞두고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삼성의 주요 임원들은 물론, 국민연금 관계자, 최순실 등을 모두 조사한 뒤에 이재용 부회장을 조사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만큼 확실한 증거와 구속 필요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은 국회 위증 혐의도 받고 있고, 여러 은폐시도도 드러났다.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기 보단 ‘높다’에 가깝다.

다음은 가장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이재용 공백’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공백이 삼성의 경영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다.

삼성엔 유능한 인물이 많다. 이재용 부회장 단 한 명의 공백으로 무너질만한 곳이 아니다. SK그룹과 CJ그룹도 최근 총수 공백을 맞은 바 있지만, 무난히 극복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실적이 증가하기도 했다. 삼성 역시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그해 삼성전자가 어닝쇼크를 기록한 바 있지만 이후 금세 정상궤도에 올랐다.

특히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를 앞두고 삼성을 위한 일종의 ‘배려’를 보였다. 당초 15일까지 결정하겠다던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하루 미룬 것이다.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 소환 조사 직후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은 것에 대해 “법리적 문제는 전혀 없었으나, 이재용 부회장의 신병처리를 상당히 고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나치게 급작스런 공백을 지양하고, 대응책을 마련할 시간적 여유를 준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또한 특검은 최지성 부회장, 장충기 사장, 박상진 사장 등에 대해서는 불구속 수사를 결정했다. 이 역시 경영진의 집단 공백을 피하기 위한 배려로 볼 수 있다.

실제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13일 오전 특검 조사를 받은 직후 회사로 향해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에서는 최악의 상황인 구속까지 염두에 두고 각종 대책과 역할배분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즉, 이재용 부회장 한 명의 공백이 애초에 삼성을 위협할 요소가 아닐 뿐 아니라, 일말의 불안 요소도 이미 충분한 대비책이 마련돼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 “정의를 세우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 배경을 밝혔다. <뉴시스>
◇ 정치는 개헌 움직임… 삼성도 대변혁 필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삼성의 구태를 완전히 끊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우리 사회에 ‘개헌’이란 숙제를 남겼다. 구시대적 권력구조의 대대적인 ‘개조’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유력 대권주자들은 시기와 방법만 다를 뿐, 모두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삼성 역시 개헌에 버금가는 대변화가 필요하다. 이병철 선대회장과 이건희 회장을 거쳐 온 체제는 시대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부정적인 측면이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막강한 경쟁력을 갖춘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만 바라보다 정도를 벗어났고, 결국 지금의 사태를 맞았다. 삼성의 브랜드 가치와 우리 경제의 국제신인도를 하락시키는 것은 ‘구속’이 아니라, 이재용 부회장 그 자체인 것이다.

경제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를 기반으로 삼아야 경제 역시 더욱 부흥할 수 있다. 더욱이 삼성은 단순히 이재용 부회장 일가 홀로 이룬 영광이 아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은 오히려 우리 사회의 정의를 훼손했다. 이규철 특검보는 이날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밝히며 “국가경제 등에 미치는 사안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욱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지난 13일 SBS ‘박진호의 시사전망대’ 인터뷰에서 “삼성뿐 아니라 우리나라 대부분의 재벌들은 과거 수입 규제로 국민들이 우리 기업이 만든 나쁜 물건 사서 쓰고, 세금 내서 기업보조금 주고, 노동자들 희생해서 만든 국민의 기업이지 이 씨 일가(이재용 부회장 일가) 것도 아니고 주주들 것만도 아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정의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수사는 뿌리 깊은 정경유착의 적폐청산을 위한 첫걸음”이라며 “이제 검은 카르텔의 단단한 장벽을 무너뜨려야 한다. 특검은 공명정대하고 엄정한 수사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함을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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