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그룹 하현회 사장(사진)이 지난해 7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의 사면을 요청한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일고 있다.<뉴시스>
[시사위크=장민제 기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한 걸음 비껴있던 LG그룹이 ‘사면청탁’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권의 횡포로 인한 일방적인 피해자란 프레임이 벗겨진 셈으로, LG그룹 역시 타 재벌과 같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논란이 발생했을 때만 해도 LG그룹은 소위 ‘무풍지대’로 여겨졌다. 최순실 관련 재단에 출연한 금액은 78억원에 달했지만, 타 그룹들에 비해 정권과의 연계점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재계 1위인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최순실 일가에 적극 지원하고 경영권 승계 도움을 받았다는 의혹과 대비돼 더욱 부각됐다. 일찌감치 지배구조 이슈 등을 해결했기에 정권에 청탁할 게 없었다는 것.

이에 지난해 말 LG그룹의 빠른 인사와 전국경제인연합회 탈퇴 결정은 ‘당당함’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소위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정도경영이 빛을 발한 격이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수사, 재판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다른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앞서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원에서 열린 최순실 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공판에선 재계 임원들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안 전 수석에게 보낸 사면관련 문자 일부가 공개됐다.

눈길을 끄는 건 하현회 LG그룹 사장도 2016년 7월 26일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의 사면을 청탁하는 문자를 보냈다는 점이다. 당시 구 전 부회장은 2000억원대 사기성 기업어음(CP)를 발행한 혐의로 징역 4년을 판결 받고 형기 95%를 채운 상황이었다.

하 사장은 안 전 수석에게 “구 전 부회장이 피해자들에게 배상과 반성을 했고, 그간 사회공헌도 많이 했다”며 “사면을 다시 검토해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LG그룹이 최순실 소유의 재단에 78억원을 출연한 다음 사면 검토를 요청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사면청탁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물론 하 사장의 문자만을 놓고 부정청탁이라 규정짓기엔 법리상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대법원 판례는 단순히 규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선처를 바란다는 의사표시는 ‘사회상규상 어긋난 부정청탁’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구 전 부회장은 사면 대상에서 제외됐고, 지난해 10월 만기 출소했다.

그러나 LG그룹이 최순실 소유의 재단에 78억원을 출연한 다음 사면 검토를 요청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사면청탁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또 대법원은 대통령에게 금품을 공여하면 바로 뇌물공여죄가 성립하고, 대통령이 실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는 범죄 성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는 특검이 최순실 소유의 재단에 출연한 기업들에게 뇌물공여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법리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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