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범 전 국방홍보원장.
[시사위크] 1만여 명에 가까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위해 작성한 것일까?

특검은 그동안의 수사를 근거로 이 사건의 대략적인 윤곽을 그려가고 있는 것 같다. 9473명의 명단을 처음 작성한 곳은 청와대 정무수석실 밑의 국민소통비서관실이고, 이를 수정한 것은 교육문화수석실이며, 이를 전달 받아 최종 집행한 것은 문화체육관광부로 판단하고 있다.

이제 남은 건 이 전체를 기획하고 지휘한 사람이 누구냐를 밝혀내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김기춘, 조윤선 두 사람에 대한 소환이 임박한 상태다.

블랙리스트와 관련, 시종일관 모르쇠로 버텨 온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9일 국회 7차 청문회에서 처음으로 문건의 존재를 시인했다. 조윤선 장관은 “문화예술인들 지원을 배제하는 그런 명단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도 ‘블랙리스트’라고 말하지 않고 ‘예술인들 지원을 배제하는 명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동안 ‘본 적도, 전달한 적도 없다’며 부인해 오던 그가 이날 처음으로 명단의 존재 자체를 인정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조윤선 장관은 “그 문서가 있다면 실제 작동됐는지 한 번 점검해 봤더니 770여명이 지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나머지 8703명이 지원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문제의 블랙리스트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청와대가 기획하고, 문체부가 집행한 일종의 현대판 살생부라고 볼 수 있다. 최초 발안자는 역시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일 것으로 특검은 추론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상황인식 하에서 문제의 블랙리스트 작성을 기획했을까?

세월호 사고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문화예술인들이 대거 반정부 움직임 양상을 보이자 청와대는 정권차원의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공안통 검사로 평생을 살아 온 김기춘 실장이 볼 때는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1939년생인 김 전 실장은 21세에 사법고시에 합격, 검사로 임관한 뒤 35세인 1974년 9월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에 발탁됐다. 그곳에서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 등을 통해 일약 명성을 얻었으나, 수십 년이 지난 뒤 모두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그의 과욕이 빚은 사법 참사였다.
 
그는 1974년 8월 15일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범인 문세광을 직접 심문, 그로부터 자백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때부터 박근혜에게 김기춘 검사는 어머니를 죽인 원수를 찾아 처벌해 준 잊지 못할 은인이 됐다.

본래 정통성이 결여된 정권일수록 언론과 문화예술계, 종교와 지식인 집단의 반정부 움직임에 민감하게 마련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전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5·18 광주민중항쟁을 계기로 신군부에 비판적인 언론인들의 명단을 작성했다. 전국에서 총 933명에 이르는 살생부가 그 해 8월 언론인 강제해직의 근거 자료로 이용됐다. 박근혜 정부가 만든 블랙리스트도 여러 가지 점에서 1980년 당시 문화공보부와 보안사(기무사의 전신)가 작성한 명단과 매우 닮아 있다.
 
이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에는 4가지 분류 기준이 활용됐다. ①세월호 정부시행령 폐기촉구 선언 참여자(594인) ②세월호 시국선언 참여자(754인) ③문재인 후보 지지선언 참여자(6517인) ④박원순 후보 지지선언 참여자(1608인) 등으로, 1980년 기준과 흡사하다.
 
당시 신군부가 내세운 기준도 4가지 정도였다. ①반체제·용공·불순한 자 ②편집·제작 및 검열거부 자 ③부조리·부정·부패한 자 ④특정 정치·경제인과 유착되어 국민을 오도한 자 등이었다. ①은 평소 반정부적 성향자로 보인 언론인이고, ②는 당시 계엄사령부에 의한 언론검열과 신문·방송 제작거부에 참여한 사람, 5·18 당시 광주 현장을 취재한 사람 등이다. ③은 각종 비행과 비리에 연루된 경우, ④는 김대중·김영삼·김종필 등과 가까운 언론인들을 가리킨다.
 
이 가운데 신군부가 가장 민감하게 처리한 대상은 ②와 ④였다. 수많은 언론인 가운데 5·18 광주민중항쟁 당시 현장에 가서 그 실상을 직접 취재한 언론인들은 신군부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목격했으니, 자신들이 추진해 나갈 대권장악 행로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또 1980년 서울의 봄을 맞은 한국의 정치상황에서 DJ·YS·JP 등 3김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언론인들은 신군부에 결코 우호적일리가 없을 것이므로 이들 또한 큰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들이 제거하려고 했던 문제의 언론인들은 나름의 기준에 따라 A, B, C 등급으로 분류됐다.

이런 기준을 근거로 당국은 문제 언론인을 골라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명단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았고, 특정 기관이 독자적으로 작성하지도 않았다. 보안사가 주도하긴 했지만 블랙리스트 작성은 문공부와 각 언론사의 협조로 몇 달의 수정, 보완 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결국 1980년 당시 언론계 블랙리스트는 이들 세 기관의 협의 아래 완성된 합작품이었다. 어떤 사람은 보안사가, 어떤 사람은 소속사가 블랙리스트에 올리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양측이 최종 협상을 통해 명단을 넣거나 빼기도 했다. 언론인의 운명이 이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
 
이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도 한 번에 완성되지 않고 몇 번에 걸쳐 수정, 보완하면서 명단을 업데이트해 나갔다. 작성기관도 한 곳이 아니고 정무수석실과 교문수석실을 거치는 동안 관련 기관들의 자문이나 의견수렴을 통해 명단을 완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재직 당시 청와대에서 보낸 블랙리스트를 직접 보았다고 폭로했다. 그는 “당시 청와대가 A4 용지에 수백 명의 이름이 적힌 문화계 블랙리스트 명단을 보내와 받아 봤는데, 한 번에 작성된 게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업데이트됐다”고 밝힌 바 있다.
 
고인이 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재직 당시의 메모한 업무일지를 남겼다. 거기에는 누가 봐도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로 추정되는 ‘장(長)’ 표시와 함께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사이비 예술가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가하면 “좌파 문화예술가의 각종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는 말도 들어 있다.
 
국회 청문회에서 바로 이 자료를 제시하며 물었지만 김기춘 전 실장은 자신은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잡아 땠다.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자. 영화배우 송강호는 물론 최근 몇 년간 노벨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고은 시인, 소설 ‘채식주의자’로 영국의 맨 부커 상을 받아 세계적으로 유명해 진 젊은 작가 한강 등이 어김없이 명단에 들어 있다.
 
한강이 맨부커 상 수상자로 확정되자 문체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축전을 건의했으나, 박 대통령이 이를 거부한 것으로 최근 밝혀지기도 했다. 한 작가가 5·18 광주를 소설로 썼다는 것 때문이었다고 한다. 얼마나 졸렬한 처사인가.

만화 ‘미생(未生)’으로 명성을 얻은 만화가 윤태호, 영화계의 정우성·류승완·김혜수·박찬욱·하지원·이창동, 소설가 김홍신과 시인 도종환, 가수 이승환 등도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았다.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여럿이 추모시집을 낼 때 참여했다는 이유로 명단에 올라간 것으로 알려진 고은 시인은 TV 방송에서 박근혜 정부의 정체성을 이렇게 꼬집었다. “그 얼마나 구역질나는 정부인가를 알 수 있죠. 그야말로 정말, 아주 천박한 야만 아닙니까?”(2016.12.28./SBS 8시 뉴스)

박근혜 정부에서 작성된 문제의 블랙리스트는 비단 문화예술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국공립 대학의 총장 임명 등 교육계에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전국 국공립대학교수연합회는 “파행적인 총장임용에 국정농단 세력이 개입한 의혹이 짙다”며 특검에 수사까지 요청해 놓고 있는 상황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건만으로도 전직 문체부 장·차관과 청와대 정무수석실 고위 간부 등이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특검은 이번 주 중 김기춘, 조윤선 두 사람을 다시 불러 심문할 예정이다.

그동안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정황들을 종합해 볼 때 김 전 실장은 그 특유의 사상과 이념이라는 잣대로 예술인들을 편 가르기 했을 것이고, 비선 실세 최순실은 자기가 추진하려는 각종 이권 사업에 장애가 되거나 반대자를 찾아내 사전에 제거하려 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블랙리스트는 어쩌면 이들 두 사람의 합작품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들 두 사람은 상대가 얼마나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존재인지를 익히 잘 알고 있지만 철두철미 직접적인 접촉은 피하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적대적인 공존·협조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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