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금강제화가 지난달 1일 남양주 별내읍에 문을 연 할인매장 '금강 아울렛 별내점'의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제화명가’ 금강제화의 입지가 위태로워지고 있는 모양새다. 후발 업체들의 맹추격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대형 악재를 만나서다. 주력 브랜드인 ‘리갈’이 상표권 분쟁에 휘말린 것. 금강제화는 ‘합법’을 외치고 있지만, 이는 중국 업체들의 논리와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35년 상표권 선점 혜택 누려온 제화명가

‘중국, 한국 베끼기 도 넘었다.’ 요즘 인터넷상에 자주 등장하는 기사 헤드라인이다. 방송포맷, 게임 등 중국내에서 한류 콘텐츠 무단 사용 사례가 이어지면서 이를 비판하는 국내 언론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중국의 한국 따라하기는 심각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중국 방송사의 한국 방송포맷 표절 의심 사례는 최소 11건에 이른다.

이와 같은 맥락에 놓인 문제 가운데 하나가 ‘상표권 도용’이다. 한국의 화장품과 프랜차이즈 등 생활 밀착형 소비재들이 중국인들에게 인기를 끌자, 현지 업체들 사이에서는 한국 브랜드 선점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2014년 1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중국에서는 1005건의 국내 상표 선점·도용 사례가 발생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내 기업들이 떠안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대륙 진출을 꿈꾸는 기업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굽네치킨’이다. 굽네치킨은 중국 현지에 상표가 이미 등록돼 있어,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상표를 되찾은 뒤 대륙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이 같은 소식을 전해든 국민들은 울화통을 터뜨리기 일쑤다. 대륙의 뻔뻔함에 혀를 내두르는 게 일반적인 국내 정서에 가깝다. 하지만 좀 더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는 무리도 더러 있다. 이들은 “한때 우리나라도 그랬다. 한국도 표절이라는 오명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며 역지사지의 자세를 견지한다.

최근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싣는 일이 발생해 논란이다. 전통의 제화기업 금강제화가 상표권 도용 분쟁에 휘말렸다. 18일 일본의 구두 1위 기업 ‘리갈코포레이션’은 금강이 ‘리갈(REGAL)’의 상표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해당 행위 금지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 및 상표등록무효심판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리갈은 금강제화의 수제화 브랜드로 스탠다는 라인인 ‘리갈’과 프리미엄 라인인 ‘헤리티지 리갈’을 보유하고 있다.

리갈 구두의 뿌리는 미국이다. 1800년대 말 미국 ‘리갈 슈 컴퍼니’에서 생산한 게 원조다. 리갈 슈 컴퍼니를 합병한 ‘브라운 그룹’을 미국 내 1등 신발 회사로 만든 리갈이 일본으로 넘어간 건 1961년에서다. 그해 리갈코포레이션은 미국 본사로부터 리갈의 일본 내 독점판매권을 부여받는 라이센스 계약을 맺었다.

▲ 리갈코포레이션이 주장한 금강제화의 상표, 표장 등 도용사례 <리갈코포레이션 제공>

이후 리갈코포레이션의 리갈 소유권은 확대됐다. 한국와 홍콩 등 주요 아시아 국가에서의 독점 판매권을 획득하는 데도 성공했으며, 1990년에는 미국·푸에르토리코·캐나다를 제외한 주요국의 상표권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이 주장한 리갈코포레이션은 “한국에서는 금강제화가 1982년에 ‘REGAL’ 표장을, 1986년에는 부츠마크에 대한 상표를 일방적으로 출원하고 이를 자사 구두 제품에 사용해 왔다”고 지적했다.

리갈코포레이션의 주장대로라면 금강제화는 35년 가까이 상표권을 선점한 혜택을 누려온 셈이다.

◇ “합법적”이라는 금강제화… 중국과 ‘닮은 꼴’

일본 업체의 주장에 대해 금강제화는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리갈의 브랜드를 사용해왔다는 게 이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금강제화 관계자는 “1982년 국내에 정식으로 상표 등록을 마치고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사업을 진행해 왔다”고 말했다.

이 같은 해명은 중국 업체들의 행태와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다. 중국 업체들의 무수한 국내 브랜드 상표권 도용 사례들 역시 중국 현지에서는 엄연한 '합법'이라서다. 이는 특허법이 속지주의와 선출원주의 원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특허청 관계자는 “상표권은 IP5(Intellectual Property5)로 꼽히는 미국·일본·중국·유럽·한국의 사례를 서칭해 유사 브랜드가 없다고 판단되면 등록이 가능하다”며 “체계가 잡혀있지 않았던 1980년대의 경우 이웃 국가인 일본에 대한 서칭이 꼼꼼히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 전으로 금강제화의 이미지 손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상표권 도용에 관한 법적 해석을 떠나 국내 제화 1위 기업의 주력 상품의 뿌리가 미국과 일본이라는 사실이 알려져서다. 특히 수익성 악화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금강제화 3세 김정훈 부사장에게 있어 리갈은 제화명가의 위상을 지켜가는 버팀목이었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금강제화 관계자는 “따로 드릴 말씀은 없다”며 “법무팀과 협의해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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