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난해 4월, 우리는 또 한 번 충격적인 재벌 갑질을 목격했다. 범 현대가 3세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정일선 사장은 자신의 편안하고, 빠르고, 안전한 이동을 도와주는 운전기사를 ‘직원’이 아닌 ‘하인’으로 여겼다. 운전기사들이 반드시 지켜야했던 A4용지 100여장에 담긴 매뉴얼은 지성과 상식을 잃은 우리사회 재벌들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법으로 정해진 노동규정은 무시됐고, 비위를 거스르면 폭력이 돌아왔다. 특히 중앙선 침범, 역주행 등 교통법규를 무시하라는 지시는 정신질환에 가까웠다.

피해자도 한둘이 아니었다. 고용노동부 조사결과 3년 동안 61명의 운전기사가 그를 거쳐 간 것으로 확인됐다. 평균 20일도 버티지 못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나마 수개월을 버틴 일부 운전기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며칠 만에 관둬야했다.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정일선 사장은 ‘글’로 머리를 숙였다.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을 게재한 것이다. “가까운 사람,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잘했어야 함에도 젊은 혈기에 자제력이 부족하고 미숙했다”는 군색한 변명도 뒤따랐다.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 그의 나이는 47세였다.

그리고 이제 정일선 사장은 사건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검찰에 의해 약식기소된 그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고, 이는 그대로 확정됐다. 상식 밖의 정신적·육체적 폭력을 가하고, 각종 법을 무시했지만 정식재판조차 받지 않았다.

300만원의 벌금은 정일선 사장에게 ‘푼돈’에 불과하다. 정일선 사장은 현대비앤지스틸 주식 38만주를 보유 중이며, 주식가치는 50억원이 넘는다. 2015년엔 12억3000만원, 2014년엔 12억5000만원의 연봉을 수령했다.

주목할 점은 재벌 2세, 3세, 4세들의 갑질 논란이 끝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일선 사장 이전에도 계속 있었고,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을 진 몰라도, 법적 엄벌에 처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는 재벌 갑질 논란이 되풀이되는 핵심 이유 중 하나다.

또한 세월이 흘러 세대를 거치면서, 재벌의 뿌리는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재벌에 속하는 이들의 숫자가 더 많아진 셈이고, 그만큼 ‘재벌 갑질’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증가하는 재벌 갑질은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 시대에서 사회 분열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선 ‘재벌 갑질’에 대한 강력한 처벌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 법은 같은 범죄라 할지라도 그 성격이나 사정에 따라 각기 다른 처벌을 내린다. 예를 들면, 생계형 범죄의 경우 정상참작이 가능하다. 거꾸로 생각해보자. 생계형 범죄가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저지른 범죄라면, 재벌 갑질은 본질적으로 돈이 너무 많아 저지른 범죄다. 가중처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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