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자네에게 편지 형식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지도 벌써 4년째야. 이순이 되던 갑오년 설 무렵에 시작해서 을미년, 병신년, 그리고 올해 정유년의 설까지 쇠었으니 네 살을 더 먹은 거네. 프랑스의 철학자인 자네(Paul Janet)라는 사람이 말했다지. ‘50세인 사람에게 1년은 10살 아이 1년의 5분의 1의 무게’라고. 맞는 말인 것 같네. 이순을 넘긴 후로는 세월의 무게가 어릴 적에 비해 너무 가볍게 느껴지거든. 하루하루가 왜 이리 쉬이 사라지는지.

하루가 24시간인 것은 10살 때나 60살 때나 똑같은데 왜 나이가 들수록 더 짧게만 느껴지는 걸까? 어떤 영국 작가의 말대로 내가 인생이 뭔지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어쩐지 좀 잔인하지 않는가? 인생의 묘미를 조금씩 알기 시작하자마자 돌아갈 시각이 바로 코앞이라니…

“춤 좀 출 만하니 허리가 아프고/ 글씨가 좀 될 만하면 팔에 힘이 없고/ 입맛 돌아오자 뒤주에 쌀 떨어지고/ 여자가 눈에 드니 몸이 말을 안 듣고”

정희성 시인의 <열암 선생의 우스갯소리>라는 시야. ‘열암’은 서예가 송정희(宋正熙)라는 분의 호이고. 짧지만 곱씹을수록 재미있는 시일세. 읽고 나면 괜히 씁쓸해지기도 하고. 젊었을 때, 어른들이 ‘뭐든 때가 있다’고 말하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 그때는 공부든 연애든 돈벌이든 맘만 먹으면 언제든 다 해낼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랐던 철부지였어. 이른바 캔두(can do) 정신을 부르짖던 독재자가 왕 노릇을 하던 시절에 초·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고 군복무까지 마쳤으니 나도 모르게 물이 든 거지. 뭐든 정신만 차리면 다 해낼 수 있다고? 참 교만했던 거야.
 
하지만 이순을 넘긴 나이인 지금은 알지. 이 세상에 자기 마음먹는 대로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는 걸. 당시 권위주의적인 정부가 앞장서서 국민들에게 주입시키려 했던 ‘캔두’ 정신 자체가 많은 사회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려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였다는 걸.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노력과 능력 부족 탓으로 돌리기 위한 장치였다는 걸. 개인의 의지나 노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사회구조의 견고함이 주는 고통임에도 불구하고 ‘이게 다 내 탓이야’라고 스스로 무릎 꿇게 만드는 도구 역할을 했던 게 ‘캔두 정신’이라는 걸 이제는 알지.

게다가 나이가 들면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 게, 젊었을 때보다 훨씬 더 많네. 흔히 세상만사 맘먹기 나름이라고 말하지만, 그것 또한 진실을 왜곡하는 이데올로기일 뿐이야. 나이가 들면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기능이 약화되는 게 자연의 이치거든. 그걸 부정하면 안 되는 거지. 춤 좀 출려고 하니 허리가 아프고, 여자가 맘에 드니 몸이 말을 안 듣는 게 거의 모든 사람들이 겪는 정상적인 육체적 변화야. 그렇지 않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고.

사회적으로 ‘노인’으로 분류되기 시작하는 나이인 65살을 넘겼지만 육체적으로 아직 혈기왕성한 사람들이 ‘나는 나이가 들었어도 웬만한 요즘 젊은이들보다 더 건강하다’고 큰소리를 치는 걸 가끔 보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아. 예전에도 말했지만 통계청의 ‘2014년 생명표’에 의하면, 한국 사람들이 건강하게 지내는 평균 나이는 남자 64.9세, 여자 65.9세야. 게다가 한국의 남자 노인들은 평균 14.1년, 여자는 19.6년을 병을 안고 살다가 죽어. 65살이 넘어서도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지 않아. 물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예전보다 오래 사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어떤 상태냐고? 아직 마음은 청춘이라고 노래하면서 살고 있지만, 젊었을 때보다 몸과 마음 모두 많이 늙은 게 사실이야. 그렇다고 허리가 아파서 춤을 못 추거나 팔에 힘이 없어서 붓을 들지 못할 만큼 노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고. 나도 사람인지라 점점 늘어나는 주름살을 보면서 서러워하기도 하지만 그런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네. 그렇지 않으면 지금보다 우울한 날들이 더 많아질지도 모르니까.

내가 사진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1000일 정도 지났네. 지금 나의 삶에서 카메라, 렌즈, 삼각대 등 무거운 촬영 장비들을 들고 다니면서 사진 찍는 게 가장 즐거운 시간인 걸 보면, 나는 아직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꽤 건강한 것 같네. 왜냐고? 무거운 카메라 때문에 팔에 힘이 없으면 흔들려서 좋은 사진을 찍기 어렵거든. 아름다운 피사체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는 것도 아직 심신이 건강하다는 증거고. 또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아직 건강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입맛은? 남들은 나이 들면 밥맛도 떨어진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도 너무 왕성해서 고민이야. 적게 먹으라는 잔소리를 날마다 들으면서도 뭐든 자꾸 먹고 싶은 게 병일세. 카메라 뷰 파인더를 통해 바라보는 사람들과 풍경들이 다 아름답게 보이니 입에서 단맛이 덩달아 솟구칠 수밖에.  

내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갑자기 윤동주의 <쉽게 씌여진 시>가 생각나 쑥스럽구먼.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많은 사람들이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미성숙’ 대통령의 후안무치한 행동들을 보면서 입맛 떨어져 힘들어하는데 나만 ‘즐거운 인생’을 노래하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네. 하지만 쓸데없는 욕심 하나 둘 버려가면서 사진 공부에 흠뻑 빠져든 말년이 즐겁기만 한 걸 어쩌나… 경망스럽다면 용서하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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