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특정) 정파나 정당에 힘을 실어줄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불과 20일 만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권의 꿈을 접었다. ‘순수한 포부’는 음해를 받았고, ‘정치교체’의 명분은 실종됐다는 판단에서다. 이로 인해 가족과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상처를 남기고, “결국은 국민들에게 누를 끼치게 됐다”는 데 자책감이 들었다. 그는 부인 유순택 씨에게만 고민을 털어놨다. 대선 불출마를 결심한 것은 1일 새벽이었다. 이날 사퇴 선언문을 가슴에 품고 국회를 찾았다. 예정된 새누리당, 바른정당, 정의당 지도부를 차례대로 예방한 뒤 정론관으로 향했다. 반기문 전 총장의 마지막 공식일정이었다.

◇ “내게 문제가 많은지 놀랐다”

반기문 전 총장이 불출마 기자회견 직후 향한 곳은 서울 마포에 위치한 캠프 사무실이었다. 저녁 만찬도 참모들과 함께했다.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는 한편 미리 상의하지 못한 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실제 이도운 대변인은 반기문 전 총장이 정론관 브리핑석에 올라갈 때까지도 불출마 발표를 몰랐다. 캠프를 총괄하고 있는 김숙 전 유엔 대사만이 반기문 전 총장으로부터 언질을 받았다.

불출마 결심을 함구해온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상의했다면 말렸을 테니까.” 그만큼 반기문 전 총장의 결심은 확고했다. 이날 귀갓길에서 만난 기자들에게도 “불출마를 재고할 가능성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앞으로는 전직 유엔 사무총장이자 사회 원로로서 할 일을 찾을 계획이다. 데뷔전을 치른 정치권과는 선을 그었다. 현실 정치의 벽은 높았고, 스스로 능력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평생 사심 없이 순수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반기문 전 총장으로선 지난 20일간의 정치 행보가 상처로 남았다. 그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국제사회에서도 저의 진실성을 의심한 사람이 없었는데, 여기 와서 내게 문제가 많은지 놀랐다”고 말했다. 언론에는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솔직히 대통령 되는데 에비앙(프랑스 생수) 병을 잘못 잡았느니, 전철을 잘못 타느니, 이런 건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거 아닌가. 그런데 신문 1면에 났다”면서 “정치인들은 무시하라고 하던데 그렇게 못하겠더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지지율’ 때문에 불출마를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이후 벌어진 정치적 상황에 대해선 이해했다. 보수 후보 이미지가 강하다는 점에서 대선을 치르는 게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감안했다. “1등으로 가던 여론이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자신이) 잘하면 (지지율이) 올라갈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바른정당 입당도 고민해봤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진영 모두를 아우르고 싶은 마음이 컸다.

◇ “누가 뭐래도 보수 맞지만…”

때문에 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예방한 자리는 다소 불편했다. 반기문 전 총장은 “(인명진 비대위원장이) 앉자마자 내게 ‘보수에 속합니까, 진보에 속합니까’ 질문을 하더라. 당황스러웠다”면서 “적절치 않은 질문이다. 보수든 진보든 다 국민이다”고 설명했다. 물론 그는 자신에 대해 “누가 뭐래도 보수”라고 말했다. 다만 그것을 구분하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반기문 전 총장이 환멸을 느낀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결국 반기문 전 총장이 불출마를 결심한 계기로 지목한 것은 ‘정치인’이었다. 앞서 그는 사퇴 선언문을 통해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는 지극히 실망스러웠고, 결국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반기문 전 총장은 “(특정) 정파나 정당에 힘을 실어줄 계획은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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