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등기이사 선임 100일을 맞이한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급변하는 사업 환경 변화에 대처해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이재용 부회장의 이사 선임과 공식적인 경영 참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권오현 부회장이 지난해 10월 27일 주주총회를 통해 밝힌 이재용 부회장 등기이사 선임 배경이다.

1991년 입사한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25년 만에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그동안 숱한 요구 속에서도 등기이사 자리를 외면했던 이재용 부회장이 돌연 ‘책임경영’을 이유로 등기이사에 오른 것이다. 지난해 큰 파문을 일으켰던 갤럭시노트7 폭발 논란은 이재용 부회장이 더 이상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100일이 흘렀다. 오는 4일이면 이재용 부회장이 등기이사로 선임된 지 딱 100일이 된다.

◇ 위상은 바닥, 의사결정은 중단

‘등기이사’ 이재용 부회장의 100일 점수는 낙제점조차 과하다.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그룹은 공교롭게도 이재용 부회장 등기이사 선임 직후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깊숙이 개입된 정황이 하나둘 드러나더니,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영진들이 줄줄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재용 부회장은 국회 청문회에서도 진땀을 흘렸고, 뇌물 공여·국회 위증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돼 옥살이 직전까지 갔다.

권오현 부회장은 이재용 부회장 등기이사 선임 당시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 삼성전자의 글로벌 위상을 더욱 강화하고, 기업가치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실상은 삼성의 위상을 바닥까지 떨어뜨렸고, 기업가치는 ‘적폐 청산 대상’이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삼성은 또 한 번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 등기이사 선임을 향한 또 다른 기대는 경영적인 측면이었다. 급변하는 환경에 신속히 대응하며, 적극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이끌 것이란 기대였다.

이 역시 현실은 정반대다. 이재용 부회장 등기이사 선임 이후, 삼성전자는 하만 인수를 제외하면 ‘올 스톱’ 상태에 놓여있다. 하만 인수도 사실상 그 이전에 준비가 끝난 사안이었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승계를 위해 최순실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삼성은 또 다시 이재용 부회장의 수사 대응을 위해 역량을 집중했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거나 영장심사를 받을 때면, 핵심 간부들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등 비상체제가 가동됐다.

그 사이 삼성의 경영적 의사결정은 완전히 멈춰 섰다. 신사업 개척이나 투자계획은 물론이고, 정기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이라는 대한민국 최고 기업이 오직 이재용 부회장 한 사람으로 인해 멈춰선 형국이다.

이 같은 상황 자체가 개혁 대상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재계관계자는 “우리나라 재벌 대기업들은 오너경영인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심하다”며 “삼성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것도 근본적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이건희, 이재용이 아닌 삼성 그 자체로도 충분한 역량을 지닐 수 있고, 이를 통해 불필요한 오너리스크를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등기이사’ 이재용 부회장이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는 여전히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를 배제하지 않고 있으며, 설령 구속은 피하더라도 기소는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헌재의 탄핵 심판 및 대선 이후 정국도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에겐 온통 안갯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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