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도겸 컬럼니스트
산너머 나무하러 간 남매는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바삐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아직 어린 나이이지만, 가족들의 따스한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땔감이 될 만한 나뭇가지들을 구하러 마을 밖으로까지 나왔다. 어느새 밤이 찾아오자 어두운 밤하늘에 말도 없이 별을 스치는 바람이 스산하다.

아무리 둘이 함께 있으며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를 해도 밤에 대한 두려움이나 무서움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떡도 준비 못했는데 곰이나 범이나 들짐승이라도 덤빌까 두렵다. 아직 못 봤지만 이웃집 아이가 말한 귀신이나 도깨비가 쫓아오면 정말 큰일이다.

그런 생각의 발길을 재촉해 보지만, 지게에 진 짐이 더욱 무겁게 느껴지니 등줄에 식은 땀이 흐른다. 다행스럽게도 저기 멀리 마을 등불이 희미하게 보인다. 긴가 민가하는 찰나에 장승을 보니 마음이 푹 높인다. 우리 마을 어귀에 다다른 게 맞으니 안심이 된다.

TV 전설의 고향에서는 무섭게 표현된 ‘장승’은 사실 마을의 수호신과 같은 귀한 존재다. 마을마다 모양과 이름도 다르고 재질이나 색깔까지도 다른 경우도 많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에게는 이정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 고마운 장승은 대부분 정월 대보름 세시풍속 가운데 세워진다.

그리고 이런 장승을 새로 만들고 세우는 장승제는 대체로 음력 정월 열나흗날에 지내는 곳이 많다. 이날 아침에는 동네마다 다르지만 미리 일주일 전부터 마을에서 선발된 남자가 정인(淨人)으로 정말 몸과 마음을 깨끗하고 정갈하게 하며 제사를 준비한다. 심지어 소변을 눌 때조차도 불순한 음경에 직접 손을 안대고 대추나무 등을 이용해서 조준을 하기도 한다. 다른 동네 사람들이 범접을 못하는 것은 물론이며 마을에서 사람도 못나가게 하기도 한다.

▲ 사진은 행사를 준비하는 토끼울 마을 주민들.
민속적으로 부정한 여성은 아예 근처에도 못 오게 하고 상을 당한 사람들이나 살생을 한 사람 뿐만 아니라 성인이 아닌 총각도 참여를 못한다. 무척이나 까다롭게 따지면서 조심스럽게 모시는 장승제를 통해서 마을 전체는 어느새 일사분란하게 하나가 되어 간다. 이처럼 장승은 미신이 아니라 마을의 미풍양속 가운데 우리의 보디가드와 같은 존재이다.

대보름 장승제를 전혀 모르는 서울 도시민들에게도 이런 의미를 전하고자 2월 9일 아침 10시부터 국립민속박물관 정문 부근 장승동산에서 충남 공주시 신풍면 쌍대리 토끼울 마을의 전통 장승제가 열린다. 새벽부터 떡을 찌고 미리 준비하고 다듬은 제물들을 가지고 이정민 이장을 비롯하여 마을 주민 30여명이 매서운 한파가 예보된 9일 새벽 버스로 상경한다. 이미 8일 오전에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은 땅에서 하늘까지 닿는 긴 ‘솟대’와 하늘과 땅을 잇는 ‘하늘새’는 물론 금줄을 달 소나무까지 모두 준비를 마치고 한바탕 풍물을 하며 내일의 행사를 준비한다.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장장식 학예연구관은 강성복 전 충남대 연구교수의 도움을 받아 장승제 전통을 잘 지켜온 마을 가운데서 토끼울 마을을 골랐다. 이 마을 장승은 일반적인 무섭게 생긴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대신 온화한 선비와 그 안주인을 묘사한 듯한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절골 근처에 있어서 부처님의 자비로운 마음이 반영된 것인지 아니면 백제 출신의 충청도 공주 사람들의 마음 마냥 온화하기 그지없는 것인지, 여하튼 오방신장을 거느린 두 장군을 경복궁에서 볼 수 있을 듯하다.

제액 초복(除厄招福)을 의미하는 이번 ‘장승제’를 통해서 토끼울 마을의 번영을 비롯하여, 다사다난했던 병신년을 소지에 날려 보내고, 국민 모두가 합심하여 2018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을 준비하는 새로운 정유년을 맞이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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