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의 환율정책에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 AP/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우리 대외수출환경의 불확실성이 날로 증가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간 미국이 주도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한 데 이어 각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 개정을 예고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교역촉진법’을 무기삼아 대미 수출량이 많은 국가들을 대상으로 실력행사에 나설 태세다.

미국의 ‘교역촉진법’이란 교역상대국의 환율에 관한 법안이다. ▲대미 무역흑자 연 200억 달러 이상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비율 3% 초과 ▲연간 GDP 2%를 초과하여 달러 순매수 시장개입 등 세 가지 기준을 상정, 세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교역 대상국에 대해서는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두 가지 이상을 만족하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 법에 따라 미국의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 나라는 2016년 10월 미국 재무부 보고서 기준으로 총 6개 국가다. 중국·독일·일본·대만·스위스와 함께 한국도 ‘관찰대상국’이다. 한국은 대미 무역흑자 약 300억 달러, 경상수지 흑자규모가 GDP대비 7.9%로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상황이다.

▲ 2010년 10월 기준 미국 교역촉진법에 따른 관찰대상국 리스트. <출처=미국 재무부,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 센터>
물론 트럼프 행정부가 직접 겨냥하는 대상은 중국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은 극히 낮은 것으로 관측한다. 9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참석한 유일호 경제부총리도 “법상으로 (환율조작국 지정) 세 가지 조건이 있고 두 개가 해당하는데 형식논리로 보자면 안 되는 게 맞다. 법대로 하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는 여전하다. 현행 ‘교역촉진법’ 요건을 적용하면, 중국도 환율조작국 지정대상국가에 해당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기 위해 법적 기준을 변경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국가무역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피터 나바로 교수는 대표적인 반중 보호무역주의자로 중국의 환율조작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미국이 중국의 환율문제에 나설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위험성이 없지 않다.

다행히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한다고 하더라도 유탄은 피할 수 없다. 위안화의 절상 압력이 높아지면, 대중 수출규모가 큰 한국에 악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도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가들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간접적인 영향이 있다”고 인정했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관계도 심상치 않다. 중국은 한중 FTA 등 국제무역협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한국기업에 불이익을 주고 있다. 한반도 사드배치로 인한 보복성 조치로 의심된다. 약 3조원을 들여 중국 선양에 건립을 추진 중이던 롯데월드에 대해 중국당국의 건설중단 조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중국은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사드 때문이 아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의심은 여전하다. 롯데그룹 한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사드부지를 롯데가 제공했다는 것 외에는 중단조치의 어떠한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정경분리 원칙을 어긴 중국의 보복조치에도 불구하고 우리로서는 딱히 제제할 방법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WTO에 중국을 제소하는 방안 등이 검토됐지만, 구체적인 물증이 나오기 전까진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중국은 과거 필리핀 등 외교적 마찰이 있는 국가에 대해 이른바 ‘비관세 장벽’이라는 교묘한 방식으로 불이익을 준 바 있다. 정부에서는 통상외교로 실마리를 찾고 있으나 사드에 대한 중국정부의 반감이 커 쉽지 않다는 전언이다.

이에 대해 유 경제부총리는 “중국이 사드를 배치했기 때문에 무역에서 불이익을 주겠다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며 “비관세 장벽이나 한류부문에 영향이 있지 않나 의심하고 있지만, 중국이 밝히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사드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우리 기업들이) 중국 내국법을 최대한 지키고, 중국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기 때문에 산업부를 중심으로 중국과 많은 대화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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