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출판사 ‘산하’ 대표로 이름을 알렸다. 30여년 동안 출판인으로 살아온 그는 17대 대선을 앞두고 김근태 전 통합민주당 상임고문의 출마를 돕기 위해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됐다.  <김현수 기자>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똑같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기 광주시민들에게 듣고 싶은 말이다. 그는 금배지를 달기 전과 후의 모습이 달라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60년 만에 야당 의원을 믿고 뽑아준 지역민들에 대한 도리였고, 원외에서 지낸 8년여의 시간 동안 다짐해온 약속이었다. 광주시민의 선택을 받기까지 두 번의 고배를 마셔야했던 소병훈 의원에게 배지는 자리가 아닌 책임인 셈이다. 훗날 자신을 지지해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래서 듣고 싶은 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잘한다”이다.

실제 소병훈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당선되자마자 발품을 팔았다. 2017년 완공 목표인 성남~광주~장호원 자동차전용도로 예산 확보를 위해서였다. 당선자 신분이었지만 주변의 의원들을 만나 사업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결국 마지막 남은 예산 988억원 전액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다. 의정활동을 시작한지 반년 만에 지역 숙원사업인 초등학교 신설을 확정했다. 교육부 차관과 교육재정과장을 비롯 경기도교육감, 국회 교문위원장과 예결위원장 등을 잇따라 만나가며 협의한 결과다. 그는 송정초에 이어 올해 쌍령1초, 장단1초 신설 추진을 계획하고 있다.

◇ 삼수 끝에 국회 입성 “첫 마음 잊지 않을 것”

▲ 소병훈 의원은 ‘초심’을 강조했다. 경기 광주시민의 선택을 받기까지 두 번의 고배를 마셔야했던 그는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처럼 절실함과 반가움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 김근태 전 통합민주당 상임고문은 소병훈 의원의 이 같은 저력을 일찌감치 알아봤다. 그는 원외위원장으로 고생하는 소병훈 의원을 만날 때마다 “출판하듯이 정치도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사실 소병훈 의원이 ‘출판인’에서 ‘직업 정치인’으로 변신한 결정적 계기도 김근태 전 고문 때문이었다. 선거철만 되면 정계입문 권유에 손사래 치기 바빴던 그는 과거 민주화운동에서부터 국민정치연구회(민평련 전신)까지 줄곧 함께 해온 김근태 전 고문의 대선 출마를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김근태 전 고문은 대통합을 위해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소병훈 의원은 전주북중·전주고 선배의 대선 캠프에 합류하기로 했다. 바로 17대 대선에서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로 선출된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이다. 그를 돕기 시작하면서 경기도 광주와 인연을 맺게 됐다. 선대위원장을 맡길 사람이 없다는 당의 우려를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이듬해 총선을 앞두고 가까운 지인들과 얼굴 붉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연고가 있는 전북 전주 대신 경기 광주를 택했다. 당선이 목표가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대선을 위해, 당내 험지를 개척하는 데 의미를 가졌다. 대선은 패배했지만, 소병훈 의원은 선전했다. 그가 첫 출마로 얻은 득표율은 27.3%였다. 지역 정서를 고려하면 적지 않은 기록이다.

주변의 격려로 다시 한 번 도전했다. 모두가 소병훈 의원의 당선을 점칠 만큼 열심히 뛰었다. 실제 19대 총선 결과는 막판에 뒤집혔다. 출구조사에서 줄곧 1위를 달리다 개표가 끝날 무렵 여당 후보에게 역전 당했다. 불과 1.2%p 차이였다. 당시 야권표가 정통민주당으로 분산되지 않았다면 소병훈 의원이 무난하게 당선됐을 것이라는 게 지역 정가의 공통된 설명이다. 그날의 석패를 떠올리던 그는 지난달 25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다음날 신문에 당선으로 잘못 나와서 축하인사를 많이 받았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어느새 경기 광주시민들과 울고 웃는 이웃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새로운 광주’를 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소병훈 의원이 삼수를 결심한 이유다.

진심이 통했던 것일까. 소병훈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51.5%의 득표율로 당선했다. 8년여만의 결실이었다. 그는 20대 국회 의정각오를 ‘일반삼토(一飯三吐) 일목삼착(一沐三捉)’으로 정했다. 주나라 명재상인 주공이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맞기 위해 밥을 먹는 중에 세 번을 뱉고, 멱을 감는 중에도 머리채를 세 번 잡고 나갔다는 일화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주공의 일화에서 정치인의 자세를 찾았다. “밥을 세 번 뱉고, 머리채를 세 번 잡고 나가는 그 절실함과 반가움을 잊지 않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초심’이다.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처럼 사람을 만나겠다”는 게 소병훈 의원의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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