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결국 ‘쇠고랑’을 차게 됐다. 삼성 역사상 총수가 ‘구속’된 것은 처음이다. .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공든 탑이 무너진 게 아니고, 쉽게 가려다 늪에 빠진 셈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을 두고 재계 한 원로가 던진 말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을 ‘한국경제 위기’로 거창하게 포장하는 시선도 있지만, 오히려 “당연한 결과”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그만큼 삼성에 신뢰를 보내는 시선은 적다. 삼성이 그동안 ‘편법’과 ‘꼼수’로 쌓아온 탑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지적인 셈이다.

실제 삼성 총수 일가는 검찰과 적잖은 악연을 맺어왔지만 초호화 변호인단을 동원해 법망을 피해왔다.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은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사회를 발칵 뒤집었지만 검찰까지 불려가지는 않았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역시 ‘X파일’(2005년)과 ‘삼성비자금’(2008년)으로 조사를 받았으나 각각 무혐의, 불구속기소 처분됐다.

법적 책임은 물론, 도의적 책임에서도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비껴나갔다. 이병철 선대회장은 경영은퇴를 선언하며 위기를 모면했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2005년 ‘X파일’ 사건에 대해 8000억 사회기금 헌납으로 대신 용서를 구했다. 2008년에도 삼성비자금과 불법경영권 승계 문제로 수사를 받았지만 이건희 회장의 경영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등으로 면죄부를 받았다.

문제는 지금까지 보여준 삼성의 ‘진정성’이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08년 ‘삼성 특검’ 당시 ‘퇴진’을 선언했지만 1년이 조금 지난 뒤 경영에 복귀했다. 1조원 규모의 사재출연 약속 역시 현재까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삼성은 “논의중이다”는 말만 수년째 반복해왔다. 이건희 회장이 와병중인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이 약속은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비리의 핵심’으로 지적돼 해체를 발표했던 ‘전략기획실’은 2년 뒤인 2010년 ‘미래전략실’로 부활했다. 이름만 바뀐 채 그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박근혜게이트’가 터지면서 삼성은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대책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다른 이름으로 재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08년 ‘삼성 특검’ 당시 ‘1조원 규모의 사재출연’을 약속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퇴진’을 선언했지만 1년이 조금 지난 뒤 경영에 복귀했다. 그리고 당시 대국민 약속이었던 1조원 사재출연도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당장 ‘이재용의 삼성’에 필요한 것이 ‘신뢰’회복인 이유다.
그만큼 삼성에 대한 신뢰는 낮다. ‘정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법을 정당화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총동원했고, 기회주의적 발상으로 당장의 위기만 모면하려는 꼼수를 부려왔다. 그리고, 이 같은 꼼수는 대를 거듭해 반복해왔다.

이재용의 구속이 되레 삼성에겐 ‘기회’라는 분석은 그래서 공감이 크다. 해묵은 ‘못된 관행’을 털어내고 진정한 ‘뉴 삼성’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라는 의미여서다. 다수 경제전문가들이 이재용 부회장에는 ‘불행’이지만, 삼성에는 ‘다행’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을 ‘정경유착 단절의 극적 전환점’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삼성의 진정한 변화를 위한 해답은 ‘정공법’이 유일하다. 꼼수와 편법을 쓰지 않는 ‘정직함’, 이를 통한 신뢰회복이 그것이다. ‘정직’한 경영활동은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할 필유가 없다. 만인 앞에서 망신을 당할 이유도 없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비난을 들을 일도 없다. “총수 구속으로 인한 한국경제 위기가 우려된다”는 식의 여론몰이도 필요 없다. 당연히 법 앞에 설 일도 없어진다.

이재용 부회장의 이번 구속에 ‘국민적 여론’, 즉 삼성의 불법과 정격유착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적잖이 반영됐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이재용 부회장의 정직함만이 그동안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불법·편법 경영권 승계’ 주홍글씨를 뗄 수 있다. 삼성 경영권 승계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것이 곧 삼성에 드리워진 검은 먹구름을 걷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3월 ‘뉴 삼성’을 외치며 실리콘밸리식 경영방식 도입을 제안했다. 반바지를 입자는 파격제안도 이 때 나왔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반바지 대신 수의를 입는 처지가 됐다. 이재용 부회장이 진정한 ‘뉴 삼성’을 이루고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하기 위해선 ‘정직함’ 만이 유일한 답이다. 이제 더 이상 ‘대국민사과’나 ‘사재출연’과 같은 꼼수, 이를 지키지 않은 공약(空約)으로는 국민을 속일 수도, 또 용서받을 수도 없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