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다음달 취임 1주년을 맞는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난해 설립 120주년을 맞은 두산그룹은 의미 있는 변화를 겪었다. 두산 특유의 ‘형제 경영’ 전통이 3세를 넘어 4세로 이어진 것이다. 4세대의 첫 리더로 나선 것은 ‘적통’ 박정원 회장이었다. 조만간 취임 1년을 맞는 박정원 회장의 취임 1년을 돌아본다.

◇ 깜짝 등장한 두산그룹 4세 경영인의 ‘벌써 1년’

시작은 파격이었다.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은 지난해 3월초, 깜짝 발표를 했다. 자신은 두산그룹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후임으로 박정원 회장을 천거한다는 것이었다. 박정원 회장이 유력한 차기 회장으로 꼽히긴 했지만, 박용만 전 회장의 나이나 입지 등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깜짝 발표였다.

그렇게 두산그룹은 창립 120주년을 맞아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1896년 문을 연 ‘박승직 상점’을 뿌리로 두고 있는 두산그룹은 2세대와 3세대를 거치는 동안 ‘형제 경영’의 전통을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갈등과 비극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전통은 잘 지켜졌다. 그리고 그 전통은 박정원 회장에게 이어지며 4세 시대를 열게 됐다.

사실 박정원 회장은 ‘비교적’ 덜 알려진 인물이었다. SNS를 즐겨하는 등 활동적이고 호탕한 박용만 전 회장에 비해 조용한 행보를 보여 왔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최재원 SK그룹 부회장 등 비슷한 또래의 오너경영인과 비교해도 일반 대중들에게 덜 알려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취임 일성은 묵직했다. 공격적인 경영과 현장 중시 문화를 강조하며 두산그룹의 새로운 도약을 천명했다. 그리고 취임 1년을 맞는 그의 첫 성적표는 ‘합격점’이다.

박정원 회장이 바통을 물려받기 전, 두산그룹은 힘겨운 시간의 끝을 보내고 있었다. 2014년부터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돌입했고, 신입사원까지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돼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박정원 회장은 진행 중이던 구조조정을 원만하게 마무리하고 그룹의 건강을 되찾았다. 두산그룹은 지난해 모든 계열사가 흑자를 달성했고,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13배나 껑충 뛰었다. 비록 ‘영업이익 1조원’의 영광까진 되찾지 못했지만, 제 궤도를 찾은 것이다.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등 핵심계열사들의 실적 회복이 특히 두드러졌다.

재무구조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2015년 10조원이 넘던 두산중공업의 순차입금은 지난해 8조8000억원대까지 내려갔고, 두산그룹의 부채비율도 263%로 13% 떨어졌다. 특히 두산밥캣 상장을 통해 3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하고, KFC, 두산인프라코어 공작기계 사업부 매각 등을 통해 3조원 이상을 마련하며 재무구조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신이 천명한 ‘현장 경영’도 철저히 지켰다. 취임 직후 각 사업장을 분주하게 찾아다닌 박정원 회장은 미국, 중국, 베트남 등 해외 현장까지 직접 방문했다.

◇ 소리 없이 강한 박정원 회장, ‘베어스’의 내실 보여줄까

▲ 박정원 회장의 취임 첫해, 두산그룹의 모든 계열사는 흑자를 기록하며 뚜렷한 회복세를 보였다. <뉴시스>
경영 성과는 아니지만 뜻 깊은 일도 있었다. 자신이 구단주로 있는 야구단 두산 베어스가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박정원 회장은 오랜 야구광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의 두산 베어스를 일군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런 그에게 두산 베어스는 가장 특별한 선물을 안겼다.

어수선한 정국에 휩쓸리지 않았다는 점도 높이 살만하다. 지난해 말 불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는 등 여러 기업이 연루돼 큰 후폭풍을 몰고 왔다. 두산그룹 역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돈을 내긴 했지만, 오너일가 차원에서 최순실 등과 접촉한 의혹은 없었다.

취임 2년차를 맞는 박정원 회장의 방향성은 확실하다. 지난해 내실을 다졌다면, 이제는 미래 성장동력을 마련해나가야 한다.

박정원 회장이 주목하고 있는 미래먹거리는 연료전지 시장이다. 2014년 사업 진출부터 진두지휘했다. 미래에너지로 각광받는 연료전지 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다면, 두산그룹의 미래는 한층 밝아질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다소 주춤한 면세점 사업의 경쟁력 확보도 박정원 회장의 주요 과제가 될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박정원 회장은 소리 없이 강한 스타일”이라며 “드러내기를 좋아하지 않는 탓에 상대적으로 저평가받고 있지만, 내실은 단단하다. 국·내외 여건이 좋지 않은 가운데, 박정원 회장이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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