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2월과 2017년 2월의 정당지지율 변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보수정당의 지지율은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데이터=리얼미터>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최근 발표되는 지지율을 보는 자유한국당의 심경은 착잡하다. 20일 발표된 리일미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15.8%에 불과했다. 정확히 1년 전 같은 조사에서 새누리당 지지율이 43.5%였던 점을 감안하면 3분의 1토막 난 셈이다.

원인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다. 정파에 상관없이 정치권의 공통된 분석이다. 다만 의문은 남는다. 진보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보수지지층이 이토록 줄어들었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유기준 자유한국당 의원은 “진보후보 지지율을 합치면 60%가 넘고 보수후보는 20%도 나오지 않는다. 여론조사가 국민들의 의견을 정확하게 대변하는지 수수께끼”라고 말했다.

물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준 충격이 그만큼 크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개인의 이념성향이나 지향점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샤이보수’가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하다. ‘샤이보수’란 미국 대선에서 언급된 ‘샤이트럼프’ 현상에서 비롯된 용어다. 트럼프를 지지하지만,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것을 꺼려한다는 의미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샤이보수’층이 생겨났다는 가정이다.

◇ 전문가들, ‘샤이보수’층 약 15% 안팎으로 파악

22일 자유한국당 유기준 의원과 이현재 정책위의장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샤이보수’와 관련된 토론회를 열었다. 샤이보수층의 존재여부를 확인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차원에서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가 발제를 맡았고, 황장수 미래연구연구소 소장, 장욱 여의도연구원 연구위원,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이 패널로 참여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샤이보수’는 존재했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한국갤럽의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을 보면 최종적으로 5% 수준이다. 그런데 탄핵 찬반여론 조사를 해보면 약 20%가 탄핵을 반대한다고 한다. 즉 10~15%는 보수표심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샤이보수층이 대표적으로 감지되는 포인트는 보수진영에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의 지지율이다. 한국갤럽의 지난주 조사에서 황교안 권한대행의 지지율은 9%였고, 비슷한 기간 리얼미터의 조사에서는 14%로 약 5% 포인트 차이가 존재한다. 질문지가 선택형이냐 주관식이냐의 여부로 이 같은 차이가 벌어진 것으로 이택수 대표는 판단했다.

그는 “주관식 질문은 주변에 직장동료나 친구, 가족이 있을 때 황교안이라는 이름을 얘기해야 하는데, 샤이보수는 얘기를 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주관식과 객관식은 질문에 따라 상당히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가중치 부여 ▲무선전화 표본대상 확대 등의 여론조사 트랜드가 숨어있는 보수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 2007년 대선 ‘샤이진보’ 현상과 판박이
 

▲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돼 이른바 '샤이트럼프' 현상이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선명한 정책노선으로 샤이지지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내는데 성공했다는 분석이다. < AP/뉴시스>

관건은 샤이보수층을 투표장으로 어떻게 이끌 것인가로 모아졌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여성비하발언과 인종차별 발언으로 ‘샤이트럼프’ 현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반자유무역, 친백인 노동자 정책 등을 제시하며 지지층으로 하여금 투표하도록 명분을 제시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의 대응책은 이 지점에서 시작됐다.

패널로 참석한 전희경 의원은 진정한 의미의 보수가치를 지향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놨다. 전 의원은 “현재 보수하면 과거 권위주의 시절부터 수구, 부정부패 이런 것이 혼재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며 “우파나 우익이라는 표현을 정확히 담아내는 정책이나 후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진정한 의미의 보수지지층을 입 다물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누구를 지지하더라도 정책면에서 큰 차별성을 못 느기고 대선후보 공약들도 보수의 가치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보수를 표방해왔던 분들은 응답을 할 수가 없다”며 “가보지 못한 보수정당의 가치, 가치중심으로 자유한국당을 재편해 국민의 선택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욱 연구위원은 ‘명분’의 필요성을 말했다.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 당시 후보의 표가 617만 표(26.14%)에 불과했는데, 이는 샤이진보가 투표를 아예 포기한 것으로 그는 해석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샤이보수가 이번 대선에 아예 투표를 포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장 위원은 “아무리 좋은 정책과 얘기를 해도 지금 (지지층들은) 듣지 않는다. 메신저의 문제, 신뢰 디폴트 상황”이라며 “새로운 신뢰를 쌓아야 한다. 정공법으로 보수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기술적·선거공학적 측면에서의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됐다. 샤이보수를 다 합친다고 해도 현 정국에서는 문재인 전 대표 등 진보진영 후보를 이길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안보동맹, 개헌동맹, 정경유착 근절 등 아젠다를 이끌어 낼 후보를 만들지 못하면, 샤이보수를 끌어낼 수 없다는 분석이다.

황장수 연구소장은 “이대로 대선을 치르면 보수진영 표를 다 긁어모은다고 해도 35% 이하로 보고 있다. 민망할 지경”이라며 “안보와 경제에서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 친문을 제외한 나머지에 안보동맹을 제한하고 분권적 개헌과 연정을 구체적으로 발표해야 한다. 여기에 동참하는 세력은 안철수부터 김종인 등 전부를 모아서 경선을 해야지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로 샤이보수를 끌어낼 수 없다”고 단언했다.

* 리얼미터 정례조사는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전국 2521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유무선 ARS 및 무선전화면접으로 조사했다. 전체 응답률은 8.1%,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0% 포인트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 참조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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