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따라하기, 상대적 박탈감만 제공할 수도

▲ 정부는 23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주재로 '내수활성화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했다. <뉴시스>

[시사위크=강경식 기자] 정부는 23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주재로 '내수활성화 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선 매달 한 차례 금요일 퇴근시간을 오후 4시로 앞당기는 '유연근무제'의 적극 유도와 전통시장 소득공제 40%로 상향, 청탁금지법 피해업종 대출지원 등의 소비·민생 진작책이 발표됐다.

일본의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를 벤치마킹한 ‘유연근무제’는 매월 하루를 '가족과 함께 하는 날'로 지정해 퇴근시간을 앞당김으로써 장시간 근로관행 개선과 직장인 가구의 여가문화를 활성화해 소비심리를 회복시키겠다는 구상이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금요일 퇴근시간을 2시간 앞당기는 대신 월~목요일 30분씩 더 근무해 평균 근로시간을 유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민간 등 구체적인 부문별 추진방안 및 참여 확대를 위한 인센티브 방안 등은 3월에 내놓을 예정이다.

그러나 ‘유연근무제’에 대해 노동계 일각에서 구조적인 개선 방안이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환경이 다른 일본의 정책을 그저 따라서 내놓은 것이라는 지적이다.

‘유연근무제’ 일본서도 ‘반신반의’

24일 시행이 예고된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를 두고 일본 내부에서도 반신반의하고 있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유통‧숙박‧레저 업계는 손님맞이에 한창이다. 1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프리미엄 프라이데이에 대응하는 일본 중심상권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숙박업소와 유통업소가 연개해 할인 행사를 펼치고 지자체가 나서서 이를 후원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도 이 매체는 ‘대부분 중소기업에서는 꿈같은 얘기’라며 ‘초기부터 일제히 도입하는 것은 어렵다’라는 우려의 시각도 함께 내비쳤다. 다른 현지 매체들도 소비를 진작시키기에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 통계청 2017 고용동향 산업별 취업자 통계자료<통계청>

일본을 따라 도입한다고 나선 국내 사정도 여의치 않다. 반신반의하고 있는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의 생산직 비율이 높아 더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통계청이 내놓은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인구의 17.2%(440만6,000명)는 제조업 종사자다. 산업별 취업자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교대근무 사업장이 많은 제조업과 같이 정부가 제안한 오후 4시에 퇴근하기 어려워 보이는 근로자들은 전체 근로자의 절반을 훨씬 넘는다. 정부안에 맞춰 ‘나인투식스(9to6)’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관리자(1.2%)’, ‘전문가 및 관련종사자(20.9%)’, ‘사무종사자(17.6%)’ 등의 비율은 합산해도 39.7%에 그친다.

더 나아가 ‘전문가 및 관련종사자’ 항목을 세분화 할 경우 이 수치는 대폭 줄어든다. 적용할 대상이 적다는 지적이 따른다. 노동전문가들은 “눈에 띄는 소비진작효과 보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제공할 공산이 큰 정책”이라며 우려했다.

한 노동문제연구원은 “산업구조와 내수구조의 차이 따라 해법이 달라저야 한다”며 “일본이 소비침체 해법가운데 하나로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를 내놓은 이유에 대해 정부가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했다면 무작정 따라하기가 아닌 우리나라 근로환경에 맞는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AI, 구제역으로 오른 밥상 물가는?

또 정부는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어려움을 겪는 음식점·화훼업·농축수산업 분야 소상공인에게 저리 융자를 지원하기 위해 800억원 규모의 전용자금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 자금을 업체당 7,000만원 한도 내에서 2.39%의 금리로 대출해 소상공인을 지원한다.

이찬우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청탁금지법 대책은 법의 근본적인 취지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모범답안을 마련하려고 했다”며 “경제, 사회적인 면을 모두 고려한 대책을 내부 논의 중이며 적절한 시기에 구체적 내용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대책에는 식사·선물·경조사비의 한도를 명시한 청탁금지법 시행령에 대한 수정 계획은 포함되지 않았다. 아직까지 원활한 직무수행, 사교·의례, 부조라는 ‘목적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면 청탁금지법 위반이다. ‘스승의 날’ 선생님께 드리는 카네이션 선물도 위법이다. 유통업계가 휴가철이 오기 이전까지 소비심리가 계속 나쁠 것으로 내다보는 이유다.

또 AI와 구제역의 여파로 더욱 위축되는 소비심리를 회복할 방안도 내놓지 않았다. 돼지구제역으로 확산 가능성도 제기되기 시작됐다. 그러나 정부는 경기회복이 필요하다면서 치솟은 소‧닭고기 가격을 잡을 방안은 누락시켰다.

이외에도 호텔, 콘도의 객실 요금을 현행가 대비 10% 이상 인하하는 경우 올해 한시적으로 해당 부동산에 대한 재산세(건물분)를 최대 30% 경감하는 관광활성화 정책이 마련됐다. 정부는 하반기부터 고속철도(KTX·SRT)를 미리 예약하면 최대 50% 할인혜택과 함께 관광소비 진작효과를 기대했다.

한편 정부는 내수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실시했던 5월 임시공휴일 지정을 올해 또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이 차관보는 “지난해 실시한 결과 소비는 증가했지만 중소기업 참여나 생산일수, 조업일수가 줄어드는 문제, 해외여행이 늘어나는 문제에 대해 추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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