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S칼텍스 직영주유소.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무관함.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2011년 9월 24일 오전 10시 30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GS칼텍스 주유소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일대는 폭격을 맞은 듯 아수라장이 됐고, 주유소 내 세차장에서 세차중이던 차량은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경찰은 세차장 지하에 보관해 오던 가짜 휘발유 탱크에서 유증기가 폭발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 사고로 주유소 직원과 고객 등 4명이 사망하고 10여명이 부상당했다. 그야말로 대형 참사였다. 관련자들에 대한 법적처벌이 내려지면서 사건은 잊혀지는 듯 했다. 그러나 6년여가 지난 현재, 이 사건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며 재조명되고 있다.

◇ 가짜석유 보관하다 폭발…피해 보상은 누가?

이른바 ‘수원 인계동 주유소 폭발사고’가 새삼 주목받고 있는 것은 당시 사건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한 여성(이하 A씨)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A씨는 차량에 기름을 넣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 사고를 당했고, 장애등급 1급에 해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보상을 받지 못했다. 사고가 발생한 주유소는 화재보험을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고, 업주 역시 재판에 넘겨져 A씨에게 보상을 해 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가족 등은 경기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1인당 평균 300여만원의 지원받은 것이 보상의 전부로 알려졌다.

날벼락 같은 사고에 심각한 부상까지 입은 A씨는 결국 GS칼텍스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자신이 사고를 당한 곳이 GS칼텍스 상호로 영업을 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그러나 A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해당 주유소가 GS칼텍스의 직영점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사고가 발생한 ‘수원 인계동 주유소’가 GS칼텍스의 석유제품만을 납품받는 조건으로 ‘GS칼텍스’라는 상호를 제한적으로 사용했을 뿐, GS칼텍스의 상호로 주유소 영업을 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쉽게 말해 GS칼텍스 간판을 달고 있지만, GS칼텍스가 직접 운영하는 주유소는 아니므로 책임 역시 GS칼텍스 측에 물릴 수 없다는 얘기다.

대법원까지 분쟁이 이어졌지만, A씨는 지난 1월말 끝내 패소 판결을 받았다.

문제는 그 이후다. GS칼텍스가 A씨를 상대로 4000여만원에 달하는 소송비용을 청구하고 나선 것이다. 민사소송의 경우 승소자의 소송비용을 패소자가 부담하는 원칙에 따른 것인데, 소송비용에는 인지액·송달료·감정비용·증인비용·변호사 보수 일부 등이 포함된다. 당시 폭발사고로 인해 전신마비가 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피해자에게 수천만원의 소송비용까지 물리는 GS칼텍스의 행태를 두고 적잖은 비난이 일기 시작했다.

▲ 2011년 9월 24일 오전 10시23분께 경기 수원시 인계동 A주유소 세차장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아수라장이 됐다. <뉴시스>

◇ GS칼텍스 “의도를 갖고 소송비용 청구한 것 아니다”

GS칼텍스는 “오해”라는 설명이다. A씨에게 소송비용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법적절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진행한 일이라는 것이다.

회사 측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돈을 받아내겠다는 의도를 갖고 소송비용을 청구한 것이 절대 아니다”며 “‘소송비용은 원고(A씨) 부담으로 한다’는 판결에 따라 기계적인 절차를 밟은 것뿐이다. 회사 입장에서 세법상 문제 때문에 (소송비용)금액을 확정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 입장에서는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보상 받을 곳도 없는데, GS칼텍스에 소송했다가 소송비용까지 물어내라하니 억울하셨을 수도 있다”며 “하지만 (소송비용 확정 등) 법적절차가 끝나면 모든 것을 판단하겠다는 생각으로 (법적절차 완료 시점까지) 기다렸던 것이다. 사실상 회사 입장에선 그 비용을 청구해서 받을 생각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현재 GS칼텍스는 A씨의 딱한 사정을 고려해 비용청구를 철회하는 내용을 검토 중이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비용청구를 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갑작스런 사고에, 평생 안고가야 할 장애, 여기에 애먼 소송비용까지 떠안을 위기에 놓였던 A씨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짐을 덜게 됐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던지는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누구라도 A씨와 같은 비극적인 사고의 피해자가 되지 말란 법이 없어서다. 그런 점에서 A씨와 GS칼텍스 간 소송에서 법원이 내린 판결은 주목할 만 하다.

▲ 상당수 정유업체들이 직영보다, 주유소가 정유사 간판만 사용하는 소위 ‘폴 주유소’ 형태 운영 비중이 크다. 하지만 ‘직영’ 아니라는 이유로 소비자들의 피해에 대해 면죄부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 간판만 ‘유명 브랜드’, 대부분 임대·대리점 형태

법원은 사고가 발생한 주유소가 GS칼텍스의 직영점이 아닌 점을 들어 손해배상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취재한 바에 따르면 GS칼텍스는 해당 상호로 영업중인 주유소가 2,500여개에 달한다. 이 중 ‘직영’으로 운영되는 곳은 전체의 1%도 채 안된다. ‘GS칼텍스’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하는 나머지 수천개의 주유소는 대부분 ‘임대(폴 주유소)’ 형태다. GS칼텍스와 관계없는 개인 또는 법인 소유인 셈이다. GS칼텍스는 이들에게 상표 사용에 대한 비용을 따로 받지 않는다. 대신 GS칼텍스 제품만 취급하는 조건으로 GS칼텍스 상표를 사용할 수 있게끔 제한적인 계약을 맺고 있다. 절대 그래선 안되겠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직영점이 아닌 주유소에서 유사사고가 발생할 경우 피해자 A씨의 사례가 재현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당시 사건이 발생한 주유소 업주는 지하탱크에 가짜석유를 보관하며 이를 몰래 섞어 팔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지난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유사석유를 판매하다 두 차례 적발돼 과징금 5000만원을 납부하고 영업을 계속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만약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운전자가 있더라도, GS칼텍스에 책임을 묻기 힘들다. 앞서 설명했듯 GS칼텍스가 직접 운영하는 주유소가 아니어서다. 관리감독의 책임도 없다.

물론 이런 상황이 비단 GS칼텍스만의 일은 아니다. 상당수 정유업체들이 직영보다, 정유사 간판만 사용하는 소위 ‘폴 주유소’ 형태 운영 비중이 크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다수의 시민은 “만약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GS칼텍스, SK, S-OIL, 현대오일뱅크 등 ‘브랜드’를 신뢰하고 주유소를 선택하는 것인데,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반드시 ‘직영점’만 찾아가야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많은 기업들이 자신의 회사 로고, 쉽게 말해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 부으며 광고(PR)를 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들이 쌓여 소비자들로부터 얻게 되는 것은 ‘신뢰’다. 쉽게 말해, 브랜드를 ‘믿고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믿음을 지켜주는 것 역시 기업의 의무다. ‘GS칼텍스’라는 간판을 신뢰한 책임이 오롯이 소비자의 몫으로 떠넘겨진 이번 사건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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