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운 촛불물결.<뉴시스>

[시사위크=백승지 기자] 광장에 봄이 왔다.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와 함께 거리 곳곳은 거대한 박수소리와 환호성으로 채워졌다. 주권자의 승리이자, 민주주의의 진일보였다.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을 이끈 것은 120일 동안 광장을 지켜온 촛불 민심이었다. ‘평화 시위의 교과서’로 자리 잡은 1500만 촛불시민의 숨 가쁜 4달간의 대장정을 되짚어본다.

 

◇ 화염병 사라지고 ‘풍자와 해학’… 촛불문화재 ‘활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광장 속 시민들이 헌법 제 1조 2항의 명문규정을 현실로 이끌어 냈다. 헌법재판소는 10일 오전 11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인용’했다. 재판관 8인 만장일치였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판결과 함께 박 대통령은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갔다.

헌재 판결을 숨죽여 지켜보던 시민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은 이날 ‘촛불항쟁승리 선언문’을 내고 주권자들의 승리를 선언했다.

퇴진행동 남정수 공동대변인은 “광화문광장이 대한민국을 바꾸는 정치였고 촛불이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보다 더 무서운 정치였다”며 “민심이 모이면 태산도 옮길 수 있고 ‘절대권력’ 대통령도 탄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논평했다.

이번 탄핵결정으로 20주 동안 이어진 광장의 촛불민심은 그 힘을 입증했다. 작년 10월29일 시작된 촛불시위는 박 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때마다 인파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주까지 20차례의 집회에 1500만명이 넘는 인원이 촛불을 들었다.

가장 오랜 기간, 가장 많은 인원이 집회를 벌였지만 폭력사태는 없었다. 평화집회는 시위 문화의 새 역사를 썼다. 주말마다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은 직접 자유발언 등을 통해 의사를 개진하는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화염병과 물대포가 사라진 자리는 ‘풍자와 해학’으로 대체됐다. ‘하야하그라’ ‘고산병 연구회’ ‘그만두유’ 등 시국을 풍자한 깃발과 피켓을 들고 경쾌한 멜로디의 하야송을 모두가 따라 불렀다. 다양한 문화행사와 준법정신에 기반한 투쟁은 촛불집회가 ‘롱런’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 “비상식적 정부에 상식적인 항쟁”

문화제 형식의 축제로 정착한 촛불시위는 세계가 주목했다. 집회장소 장소 주변을 청소하는 등 성숙한 시민의식과 협조로 이뤄낸 축제 같은 집회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촛불집회는 평화적이었으며 거의 축제에 가까웠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도 ‘퇴보하는 한국 정부, 그렇지만 앞으로 전진 하는 한국사회’라며 성숙한 시민의식을 높이 칭찬했다.

학계서는 이번 촛불집회가 남긴 메시지에 주목한다.

송주명 한신대 교수(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는 “촛불집회는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상의 명문규정과 민주주의를 현실로 살려낸 것”이라며 “매주 꾸준히 진행된 촛불시위가 헌재와 특검에 본인들이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소명의식을 주었고, 결국 수사와 판단에 한층 신중을 기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선진화된 투쟁 방식 또한 하나의 성과로 평가된다. 송 교수는 “왜 촛불집회 참가자들이라고 차벽을 뛰어넘고 싶지 않았겠느냐”며 “비상식적 정부에 분노한 시민들이 스스로 자신을 절제하고 철저히 준법정신을 지키며 항쟁하는 모습은 그들의 메시지에 더 큰 힘을 실어주는 발판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내려진 후 서울 종로구 일대는 탄핵찬성 집회 참가자들이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좌절과 분노를 넘어선 약 1만명의 시민들이 도심 곳곳에서 탄핵의 기쁨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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