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시사위크] 김정은 권력 최상층부에서의 파워게임이 심상치 않은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 체제를 이끌어가는 노동당의 핵심부서인 조직지도부와 공안통치 기구인 국가보위성이 새해 백두부터 정면충돌하고, 군부 핵심인 총정치국까지 가세하면서 물고 물리는 권력투쟁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우리 정보 당국의 전언이다.

북한 권력의 ‘넘버 2’ 그룹이라 할 수 있는 최용해 당 부위원장과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간에 힘겨루기가 한창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여기에 2월 중순에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암살당하는 사태까지 발생해 평양 권력의 핵심부는 더욱 뒤숭숭하다고 한다.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 1월 중순 김원홍 국가보위상이 권한남용과 비리 등의 혐의로 사실상 숙청됐다. 대장(별넷)에서 소장(북한군은 별 하나)으로 강등되고 가택연금까지 당했다. 보위성의 부부장급 인사들이 줄줄이 처형되는 등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한다. 대북 소식통은 “김원홍이 부하들을 시켜 노동당 조직지도부의 과장급 인사를 조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해 사망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고 밝혔다. 조직지도부는 당 간부들에 대한 인사권을 갖고 있는 막강한 부서로 북한에서는 ‘당 속의 당’으로 불린다. 김원홍이 조직지도부의 반격을 당해 몰락의 길에 접어든 것도 이런 조직지도부의 파워 때문이란 해석이다.

그런데 김원홍 숙청에 평양 권력의 최고 핵심인사들 사이의 알력과 반목이 작용한 정황이 대북 정보 당국에 추가로 포착됐다.

국가정보원 산하 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19일 언론기관에 제공한 북한 내부 정세 관련 자료에 따르면 김원홍 제거를 주도한 인물로 최용해 당 부위원장이 꼽혔다. 보위성을 장악해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던 김원홍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최용해가 당 조직지도부 등에 포진한 자신의 심복들을 내세워 보위성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을 벌이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전횡과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속속 드러났고, 결과를 보고받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김원홍을 숙청했다는 것이다.

북한 권력의 2인자 자리를 놓고 어깨를 겨뤄온 최용해 당 부위원장과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사이에도 권력다툼의 양상이 포착된다고 한다. 최용해는 김정은 집권 첫해인 2012년 4월 군 총정치국장에 앉았다. 하지만 당시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이던 황병서는 “최용해가 군부 내에 자신의 인맥을 구축해 세력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김정은에게 직보했다. 최용해가 전격 해임되면서 그 자리는 황병서가 차지했다.

절치부심해온 최용해도 만만치 않은 존재다. 그의 아버지 최현(1982년 사망) 전 인민무력부장을 북한 관영매체들은 아직도 “수령에 대한 진짜배기 충신”으로 찬양한다. 최용해는 이른바 ‘빨치산 2세’로 북한 권력의 일정한 지분이 있는 셈이다. 어떤 식으로든 재기를 노릴게 분명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용해도 황병서가 군부 내 정치·군사·보위 부문 장성들을 묶어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정황을 포착해 반격을 노릴 것이란 얘기가 북한 권력 내부에서 돌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권력 2인자들 사이의 사활을 건 권력암투가 이어지면서 노동당과 군부의 간부층의 동요가 심화되고 주민 통제력도 급격히 약화되는 등 체제의 불안정성이 가중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정은의 공포정치에 엘리트 세력들이 “언제 내가 숙청 대상이 될지 모른다”며 불안에 떨고 있다는 것이다. 토사구팽(兎死狗烹)식으로 물고 물리는 시스템 아래서는 누구도 숙청행렬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김원홍 국가보위상은 2013년 12월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전격 처형할 때 앞장선 인물이다.

집권 6년차에 접어든 김정은의 부실한 리더십에 실망감한 북한 엘리트 계층이 마음 속의 짐을 싸둔 채 여차하면 탈북을 결행할 채비를 하고 있다는 진단도 눈길을 끈다. 해외에 근무하거나 체류 중인 엘리트들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할 수 있다. 대사관이나 무역 대표부 등 해외 근무로 인해 외부사정에 밝은 계층은 김정은 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을 누구보다 잘 파악할 수 있다. 지난해 7월 탈북·망명한 태영호 전 런던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는 “대사관 소속 외교관이나 직원들의 핸드폰에 한국 언론사의 뉴스 앱이 깔려있고 이를 통해 남조선 소식을 훤히 다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를 뒤흔든 김정남 암살 사건은 북한 체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과 반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권력을 위해 이복형마저도 무참히 살해하는 김정은의 행태를 지켜보는 북한 엘리트층의 갈등이 커진다는 말이다.

북한은 올해 김정은 우상화에 공을 들일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김정일 75회 생일(2월 16일)에 이어 김일성 105회 생일(4월 15일)로 분위기를 띄운 뒤 8월에는 백두산과 평양에서 이른바 ‘백두산위인칭송대회’를 개최한다는 것이다. 김정남 살해를 두고 김정은 우상화에 최대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시도였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염두에 둔 것이다.

태영호 전 공사는 북한 당국에 선발돼 조기유학했다. 평양국제관계대학 졸업 후에는 최고지도자 전담 통역사인 ‘1호 양성통역’으로 선발돼 덴마크로 유학을 떠나기도 했다.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거친 태영호 전 공사는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국제사회의 대북공세를 차단하는 방어막 역할을 맡았다. 유창한 영어로 외신을 향해 북한체제의 논리를 선전하고 전파하는 선봉에 선 것이다.

하지만 태영호 전 공사는 김정은 체제 등장 5년 만에 평양을 뒤로하고 망명길에 올랐다. 그리고 서울 도착 후에는 대북비판과 북한 민주화를 위한 활동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거치며 북한 당국의 기대를 모았던 태영호 전 공사가 이제 북한이 가장 골치 아프게 여겨야 하는 ‘김정은 저격수’로 자리 잡았다. 조기유학을 통해 터득한 유창한 영어실력은 북한 체제의 호전성과 핵·미사일 도발, 인권유린 등을 국제사회에 폭로하는 부메랑이 됐다.

평양 권력 핵심부에서는 권력다툼이 이어지고 최고지도자는 피비린내나는 공포정치를 펼치고 있다. 해외 주재 엘리트들 사이에서는 김정은 체제에 대한 실망과 이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 권력 안팎에서 나타나는 이런 균열상은 김정은 체제의 불안한 미래를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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