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산업은행 본원에서 대우조선 구조조정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정부가 유동성 위기에 몰린 대우조선해양에 2조9,000억원의 추가 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2015년 10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통해 4조2,000억원의 지원방안을 확정한 지 1년6개월만이다. 그간 “추가 혈세 투입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다 번복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23일 “채권단이 업황 부진과 내재적 위험요인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었다.

◇ 추가 지원 없다더니… 구조조정 관리 실패 '책임론'

이날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산은 본사에서는 ‘대우조선 구조조정 추진방안 발표’ 간담회가 열렸다. 사안의 중대함과 관심을 반영하듯, 이날 간담회장에는 취재기자와 카메라 기자진으로 빽빽하게 들어찼다. 채권단 경영진은 막판까지 회의를 하다가 당초 계획된 일정보다 다소 시간이 지난 후에 입장했다.

대우조선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수장인 이동걸 회장은 “대우조선의 정상화 작업은 다시 선택에 기로에 섰다”며 무거운 표정과 함께 입을 열었다.

이 회장은 “채권단의 자금 지원과 대우조선의 자구 노력에도 수주 가뭄 지속, 유가 하락 등 외부 여건 악화로 다시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며 “채권단이 조선업의 장기시황 부진, 대우조선의 내재적 위험요인을 보다 보수적으로 판단해 대응하지 못했던 점 대단히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또 “거듭된 대외 환경 악화로 대우조선의 정상화 추진이 사실상 한계에 직면했다”며 “대우조선의 향후 부족자금 규모와 회생을 위한 대안을 검토한 결과 4월말 유동성 부족이 발생한 후 그 규모가 2018년까지 크게 확대될 수 있다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당장 내달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를 상환하지 못하면 사실상 부도 상태”라며 “급박한 경영상황을 고려하면 정상화 방안을 미룰 수도, 미뤄서도 안 되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정상화 방안은 모든 이해관계자의 손실분담 원칙에 따라 대규모 출자전환을 통한 근원적 채무조정이 이뤄진다는 전제 하에 추진된다”며 이해관계자들이 고통분담을 호소했다. 

산은이 발표한 ‘대우조선 구조조정 추진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채권은행과 회사채 투자자들이 3조8,000억원에 달하는 출자전환과 채무조정에 합의하면 신규자금 2조9,000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채권은행 등 이해관계자에게 채권의 출자전환과 만기연장을 제안했다.

▲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뉴시스>

시중은행의 경우(약 7,000억원 대상 무담보채권) 80% 출자전환 및 20% 만기연장을, 1조5,000억원 규모의 회사채·CP 채권단에게는 50% 출자전환 및 50% 만기연장을 하는 방안을 요구받았다. 산은과 수은은 1조6,000억원의 무담보 채권을 100% 출자전환할 방침이다.

아울러 대우조선의 인력 감축, 자산 매각 등 자구노력에 대한 방안도 제시됐다. 이해관계자의 자율적 합의가 불발될 시 법적 강제력 활용한 P-플랜을 통해 정상화를 도모할 계획이다. P-Plan은 복합형 구조조정제도(Pre-Packaged Plan)로서 법정관리의 일종이다.

질의 응답 시간에는 주채권은행과 금융당국을 향한 날선 질문들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책임론’이 크게 부각됐다.

앞서 채권단과 당국은 앞서 4조2,000억원 지원 계획을 발표하면서 추가 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조선업 불황으로 신규수주가 당초 예상한 115억달러에 한참 못미치는 15억4,000만달러에 그쳤고 결국 입장을 번복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구조조정 관리 실패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이냐는 질문이 쏟아졌고 이 회장은 “책임을 지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고 수긍했다. 다만 “현재는 위기를 극복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며 “연착륙이 되지 않아 다시 책임 문제가 나온다면 책임을 피해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추가 지원 불가 입장을 번복한 것에 대해선 거듭 고통스런 입장을 드러냈다. 이 회장은 “지난 열흘 이상 힘들고 고통스러웠다”며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지 않겠다고 일관되게 얘기하면서 이번에 지원을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점에서 (스스로) 괴로웠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추가 지원을 내린 이유는 대우조선 파산 사태가 불러올 국가 경제 손실 규모가 너무 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대우조선이 가동을 멈추면 국가적으로 59조원의 손실이 난다”며 “2년 정도 지원해서 굴러가게 하면 27조원의 리스크를 해지할 수 있다. 힘든 결정이었다”고 강조했다.

지원 결정에 정부 측 압박이 작용했느냐는 질문에는 단호한 표정과 함께 선을 그었다. 이 회장은 “제가 압박을 받아 물러날 연령대가 아니다”라며 “국익에 도움이 되는 선택이 최우선이다”라고 답했다. 또 “항간에는 대우조선 지원이 정치적인 판단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지난 40년간 뱅커였다”는 말로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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