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마포구 공덕구 전경. <뉴시스>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국내 부동산 시장에 재건축·재개발 바람이 거세다. 은행권 대출 문턱이 높아진 가운데 건설사들이 미분양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은 도시정비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 여기에 초과이익 환수를 피하려는 조합의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재건축 수요가 증가, 건설사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하지만 서울 강남과 경기 과천 등 일부 사업지에서는 시공사가 교체되는 등 제 살 깎아 먹기 식 출혈경쟁이 빚어지고 있어 우려를 낳는다.

◇ 대형사에 중견사까지… ‘되는 장사’ 재개발 열풍

연초부터 건설사들의 재건축·재개발 시공권 확보 경쟁이 뜨겁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수도권에서만 서울 서초구 신동아아파트, 마포 공덕1구역, 동작구 흑석9구역 등이 시공자선정총회를 앞두고 있다.

벌써 이달에서 2건의 굵직한 아파트 재개발 수주전이 펼쳐졌다. 26일 열린 과천 주공 1단지에서는 대우건설이 현대건설, GS건설과의 각축 끝에 총 1012표 중 381표를 얻어 시공권을 따냈다. 대우건설은 시공사 선정 당일 조합사무실을 직접 찾은 박창민 사장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현대건설에 18표차로 승리를 거머졌다.

11일에는 강남 노른자위 대치 2지구에서 롯데건설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당시 조합원 206명 가운데 200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롯데건설은 총 득표수 101표를 얻어 대림산업을 3표 차로 따돌렸다.

최근 재개발 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는 건 대형사만이 아니다. 그간 대형건설사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도시정비 사업에 중견건설사들이 가세하면서 판을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 이들 가운데 대형사 못지않은 인지도를 누리는 일부 업체는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서울에서 재개발 수주 깃발을 꽂는데 성공했다.

아파트 브랜드 ‘베르디움’으로 유명한 호반건설은 최근 서울에서 두 번째 정비사업을 수주했다. 지난 25일 양천구 신정2-2구역 재개발 시공사선청총회에서 시공사로 선정됐다. 지난해 성북구 보문5구역 재개발사업을 따낸 뒤 8개월 만에 거둔 쾌거였다.

시평 50위권 대에 랭크된 반도건설은 지난 11일 서대문구 영천구역 재개발 시공사로 선정됐다. 총 공사금액이 790억원인 이 사업은 영천동 일대에 지하 5층~지상 23층 아파트 199가구와 오피스텔 172실을 신축하는 사업이다. 지난 1월에는 태영건설이 서울의 중심 용산에서 효창6구역 재개발 시공권을 따냈다.

◇ 조합에 넘어간 주도권, 건설사는 속수무책

도시정비 사업을 둘러싼 건설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곳곳에서 출혈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수도권의 주요 재개발 구역에서 시공사가 교체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이는 신규 물량 확보에 애를 먹는 건설사들이 낮은 미분양률로 고수익이 보장된 재개발에 몰리면서 사업의 주도권이 조합으로 넘어간 데 따른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시공사가 조합 운영비를 계획대로 대여해주지 않거나, 공사비를 인상할 경우 조합이 시공사 교체라는 특단의 카드를 꺼내들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곳이 과천 주공 1단지다. 최근 대우건설의 몫으로 돌아간 이 사업지의 시공사는 포스코건설이었다. 하지만 일반분양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에서 돌연 시공사가 바뀌었다. 포스코건설이 설계 변경을 이유로 공사비를 600억원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한 게 조합원들의 심기를 건드린 요인이었다.

뿐만 아니다. 서울 서초구 방배5구역의 시공사도 교체된다. 조합은 지난 18일 총회를 열고 시공사로 선정된 프리미엄사업단(GS건설·포스코건설·롯데건설)과 계약을 해지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사업단 측에서는 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법정 공방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재개발 사업이 호황인건 그만큼 부동산 시장이 좋아지고 있다는 청신호”라며 “도시정비 사업에서 건설사와 조합의 주도권은 어느 한 쪽이 쥐고 있는 게 아니라 싸이클이 존재한다. 하반기에 재개발 경기가 꺾이게 된다면 주도권은 자연스레 건설사 쪽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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