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 중견건설사들의 로고. < 각사 >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 사물·단체·현상 따위에 붙여서 부르는 말’. 이름의 사전적 정의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이름이 없다는 건 다른 것과 구별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즉, 세상 모든 만물은 이름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름이 없는 기업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국가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기업을 일군 창업주들은 저마다 경영 철학과 창업 정신을 사명에 담는다. 수십 개에 이르는 대기업 계열사를 하나의 이해관계로 묶어주는 근본적인 힘 역시 이름에서 나온다.

이미 해외에 까진 알려진 대기업과는 달리 중견기업들의 경우 국내에서도 생소하게 들리는 경우가 있다. <시사위크>가 올해 20년을 맞아 성년이 된 ‘토목의 날’을 기념해 묵묵히 건설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해 온 중견건설사들의 이름(사명)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 ‘자식사랑, 나라사랑’… 사명에 담은 회장님들

1982년 운송업체로 출발해 1994년 건설 분야로 전환한 서희건설. 대형사들의 관심이 덜한 병원과 학교, 교회 등 틈새시장 공략에 성공한 서희건설은 오늘날 지역주택조합의 강자로 불린다. 지난해 매출은 1조원을 돌파했으며, 시공능력 20위권의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사명 ‘서희’에는 이봉관 회장의 자식 사랑이 담겼다. 이 회장의 세 딸(은희·성희·도희)에게서 지금의 이름이 탄생했다. 숫자 ‘세 개’의 경사도 사투리 표현인 ‘서이’와 세 딸의 ‘희’자 돌림이 결합해 지금의 이름이 만들어졌다. 최근까지 한 뉴스 전문 케이블 방송에서 들을 수 있었던 서희건설의 TV광고 CM송에 “하나 둘 서희~”라는 가사가 들어간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서희건설의 작명에 관한 에피소드 하나. 본래 이 회장은 사명으로 ‘삼희’를 유력 후보로 꼽았다. 하지만 동명의 건설사가 이미 등록돼 있어 표준어인 ‘3’ 대신 자신의 고향(경주)인 경상도 사투리로 선회했다는 후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터프하고 거친 느낌이 강한 건설시장에서 여성적 느낌이 강한 사명이 주력 사업인 주택사업을 진행하는 데 여러모로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최근 대형사들의 전유물로 여겨진 서울에서 재개발 깃발을 꽂은 반도건설 권홍사 회장 역시 자식 사랑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물이다. 이 회사 아파트 브랜드 명인 ‘유보라’는 권 회장의 장녀(보라) 이름에서 착안했다. 서희 이봉관 회장의 첫째와 둘째딸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것과 달리 보라 씨는 직접 회사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랜드에 자식에 대한 사랑을 담은 권 회장은 사명에서는 나라를 생각했다. ‘반도’는 우리나라의 국토 지형인 ‘한반도’에서 따왔다. 여기에는 부산 태생인 반도건설이 한반도 전체로 뻗어나가라는 권 회장의 창업 정신이 담겨 있다는 게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 유래는 ‘각양각색’ 의미는 ‘천편일률’

대전을 연고로 하는 계룡건설은 지역의 랜드마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지역에 위치한 전국구 명산인 계룡산의 정기를 받아 큰 회사가 되라는 이인구 회장의 뜻이 사명에 서려있다.

많은 중견건설사들은 업종의 특성에 맞게 ‘크게 되라’, ‘좋은 집을 집겠다’라는 뜻을 기업 이름에 담았다. 대표적인 예가 태영건설이다. 이 회사의 한자 뜻은 ‘클 태’와 ‘꽃 영’으로 ‘크게 핀 꽃’이라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끝 단어 ‘영’이 윤세영 회장을 뜻한다는 말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윤 회장의 이름에 있는 ‘영’이라는 글자 역시 ‘꽃 영’자를 쓰기 때문이다.

‘집 우’자와 ‘아름다울 미’자를 우미건설의 뜻풀이는 그대로 ‘아름다운 집을 짓겠다’다. ‘Y CITY’로 알려진 요진건설은 특이하게도 중국의 중세 시대 국가인 ‘요나라때처럼 번창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10세기 무렵 중국 북방에서 거란족이 세운 정복 왕조인 요나라는 당시 동아시아에서 최강국의 위세를 떨쳤다.

이외에도 반도건설의 형제 기업인 IS동서는 전신인 일신건설사업의 이니셜과 동서산업을 결합해 탄생했다. 또한 시평 13위의 호반건설은 ‘호숫가 언저리’라는 뜻으로 호수 주변처럼 편안하고 안락한 집을 집겠다는 철학이 녹아있다.

업계 관계자는 “비교적 최근 탄생한 아파트 브랜드명에는 세련되고 트렌디한 느낌을 담을 수 있도록 상당한 수고를 들인다. 하지만 수십 년 전에 지어진 회사 이름에는 이러한 고민 없이 단순히 회사를 키우거나 좋은 집을 짓겠다는 1세대 창업주와 주변 분들의 생각만 담기다 보니 다소 투박하고 단순한 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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