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집무실 책상 위에는 부친 김철배 강원도당 상임고문이 직접 쓴 서체 ‘큰 뜻’이 담긴 액자가 걸려있다. 국가재정전문가인 그는 “사람의 경제를 구현하는 길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시사위크>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사실 저는 아버지를 미워했다.”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고백은 담담했다. 도리어 웃음을 보였다. 1년여 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는 지난해 1월 입당 기자회견에서 아버지를 떠올리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20대 총선을 코앞에 두고 고향인 강원도 철원·화천·양구·인제 지역에 출마할 각오를 전하자 “왜 아들마저 바보처럼 사느냐”며 만류하던 사람이 바로 아버지였던 것이다.

김정우 의원의 아버지는 김철배 강원도당 상임고문이다. 당초 김정우 의원이 출마를 다짐한 고향에서 1985년 12대 총선부터 내리 5번에 도전했으나 모두 고배를 마셨다. 그만큼 험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깃발을 지켜왔다. 문재인 전 대표가 김철배 고문에 대해 “민주당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말한 이유다. 하지만 아들 앞에선 영락없는 아버지다. 김정우 의원은 울컥했다. 정치를 시작해서야 털어놓았던 그 고백, 아버지가 미웠는데 말이다.

◇ 엘리트 공무원 되기까지 대학 3수, 낙방 5번

가난만 아니었다면 조금 덜 미웠을까. 김정우 의원은 태어날 때부터 가난을 몸소 느껴야했다. 그의 어머니는 제왕절개를 할 돈이 없었다. 결국 집게 시술을 강행하다 그만 아이의 오른쪽 눈을 집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래서 김정우 의원의 오른쪽 눈은 심한 약시다. 이후에도 어머니는 가난과 힘겨운 싸움을 이어갔다. 아버지가 5번에 걸쳐 총선에 출마하는 동안 화장품, 사료 등을 팔며 생계를 책임졌다.

김정우 의원은 지난 2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냈다. 그 시절, 김정우 의원은 “아버지처럼 안 살겠다”고 다짐했다. ‘정치하는 아버지와 반대로 가는 길’을 택한 것. ‘나랏일 하는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쉽진 않았다. 3수를 해서 서울대 국제경제학과에 들어갔고, 5번 낙방한 뒤에야 행정고시 합격증을 받았다. 장애를 극복하고 엘리트 공무원이 되기까지 고된 시련을 겪은 것이다.

도전은 계속됐다. 김정우 의원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영국 브리스틀대 대학원 정책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공직 생활도 충실했다. 국무조정실, 국무총리비서실에 이어 기획재정부에서 예산, 재정, 정부개혁, 국고관리 업무를 두루 섭렵했다. 20여년의 공직을 마감하고 떠나기 전 마지막 직함은 기재부 국고국 계약제도과장이었다. 나라 곳간의 열쇠를 쥔 ‘곳간지기’ 역할이다. 때문에 김정우 의원은 “나라의 곳간에 새는 구멍이 어디인지, 어떤 쥐가 살고 있는지, 그 쥐들이 혈세를 어떻게 갉아먹는지 손바닥 보듯이 알고 있다”고 말했다.

▲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갔다. 김정우 의원은 지난 겨울 주말엔 광화문 광장에서 김철배 고문과 함께 촛불을 들었다. 그는 “(아버지께) 그만 오시라고 해도 ‘데모는 내가 선수다, 인마’ 하시며 촛불집회에 꼭 참석하셨다”고 말하며 웃었다. <김정우 의원 페이스북>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김정우 의원은 “국민의 돈으로 제 배를 불리는 세금도둑부터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후 “곳간 안을 제대로 청소하기 위해 제대로 된 재정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정치가 바뀌어야 나랏일이 바뀐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버지를 따라 정치의 길로 들어선 이유다. 그 길목에서 김정우 의원은 아버지와 마주 앉았다. 문재인 전 대표의 영입 제안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서다.

김정우 의원은 기자에게 “아버지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대선배 아닌가. 아버지가 아무리 미워도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아버지는 “당에 들어가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되 철원은 출마하지 말라”고 아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끝내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김정우 의원이 마음을 돌리게 된 것은 선거구 조정으로 홍천이 지역구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홍천·횡성을 지역구로 둔 조일현 전 의원이 출마를 선언한 터라 “같은 당 선배와 경쟁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김정우 의원은 당의 결정에 맡겼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정부의 재정지원이 많이 필요한 지역을 원했다. 기재부 출신 능력을 발휘해 지역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는 경기 군포갑으로 전략공천을 받았다. 20대 총선까지 37일 남겨뒀을 때다. 짧은 시간 동안 국민의당과 정의당까지 4당 후보가 경쟁을 펼쳤다. 김정우 의원은 접전 끝에 726표차로 승리했다. 그는 당선이 확정되자 아버지와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 문재인과 손잡고 국가재정 정책 밑그림

고마웠다. 그래서 더 부지런히 뛰었다. 김정우 의원은 임기 시작 이후 지난 한해를 마무리하는 7개월여 동안 15개의 법안을 대표발의하고, 본회의와 상임위 출석률 100%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102억원의 국비를 확보했다. 처음으로 치른 국정감사에선 강신명 전 경찰청장의 위증을 밝혀냈고,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서울시가 소화전을 통해 경찰 살수차에 물을 공급해주지 않겠다는 답변을 얻어냈다. 뿐만 아니다. 따끔한 지적으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발끈하게 만든 사람도 바로 그다.

하지만 김정우 의원의 진가 발휘는 이제부터다. 전문분야인 ‘국가재정’에 관한 진단과 해법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입당 기자회견에서도 “정책이 살아 숨 쉬는 더불어민주당, 대안이 날이 서있는 더불어민주당이 되는데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특히 “차기 정권은 인수위 과정 없이 출범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선거 공약이 바로 국정과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보다 현실성 있는 정책 비전이 제시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김정우 의원은 문재인 전 대표와 함께 “국민이 모두 살맛나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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