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 지난 4일 CJ대한통운의 블랙리스트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택배연대노조 페이스북>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블랙리스트, 나쁜 사람들. 어딘가 익숙한 단어다.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여러 사건들 속에서 등장했던 바 있다. 그런데 이 단어들이 또 다른 곳에서 등장했다. 그동안 노조탄압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CJ대한통운이다.

◇ 재취업 가로막힌 택배기사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은 지난 4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이 내건 현수막엔 “제가 CJ대한통운 블랙리스트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기자회견을 통해 제기된 의혹은 충격적이다. CJ대한통운의 한 대리점(집배점)에서 일하다 대리점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었던 A씨는 다른 대리점에 취업을 시도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자신이 ‘취업불가 명단’에 포함돼있다는 말을 들었다. 택배기사로 일하기 위해서는 사번(전산코드)를 받아야 하는데, 발급 불가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A씨는 앞서도 또 다른 대리점에서 취업 직전까지 갔다가 “일을 관두기로 했던 사람이 계속 하기로 했다”는 이유로 무산된 바 있었다.

블랙리스트 존재 정황은 다른 곳에서도 포착됐다. CJ대한통운 대리점 소장들 사이에 돈 문자다. 먼저 택배기사 4명의 이름과 나이가 적혀있다. 이어 “위 네 명에 대해 혹시나 각 집배점으로 취업요청이 오면 정중히 거절하시기 바랍니다. 이유는 집배점을 교란하는 나쁜 인간들 입니다”라고 당부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블랙리스트에 오른 4명은 누구일까. 택배연대노조에 따르면 이들은 CJ대한통운 동부이촌대리점과 계약을 맺고 일하던 택배기사였다. 그런데 ‘오전하차 종료’를 요구하며 대리점과 마찰을 빚었고, 해당 대리점이 폐업해 일자리를 잃었다.

‘오전하차 종료’란, 오전 중에 배송물품 배정을 마쳐 달라는 것이다. 배정이 늦어져 오후에 끝나면, 배송작업도 늦게 끝나 전체적인 근무시간이 과도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추가수당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즉, 물량 과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설 및 인력 투자를 해달라는 요구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 피켓시위 등을 벌인 바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대리점 폐점에 따른 실직과 취업을 막는 블랙리스트였다. 택배연대노조는 이 같은 일련의 사건 뒤에 CJ대한통운이 있다고 지적한다. 택배연대노조 측은 “이번 일로 진짜사장 CJ대한통운이 갑질해고의 몸통이었음이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택배연대노조가 제시한 대리점 소장 녹취록에는 “용산에서 근무했다고 했으면 알 수 있었을 텐데, 몰랐지”라는 내용도 나온다. 여기서 용산은 과거 이들이 마찰을 빚었던 대리점을 의미한다. 즉, ‘오전하차 종료’ 요구 및 이에 따른 갈등이 이들의 취업 불가와 관련이 있다는 뉘앙스로 해석된다.

이러한 의혹은 앞서 벌어진 사건과도 맥락이 닿아있다. CJ대한통운은 지난해 노조 조합원들을 미행·감시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또한 올해 초 택배연대노조 창립 당시 많은 택배기사들이 대리점으로부터 회유와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 CJ대한통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

▲ 택배연대노조가 공개한 문자메시지. 특정 택배기사들을 채용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 CJ대한통운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CJ대한통운은 회사 차원의 블랙리스트 운영은 애초에 구조적으로 불가하다고 설명했다. CJ대한통운은 대리점과 계약을 맺고, 다시 대리점이 택배기사들과 계약을 맺기 때문에 개입할 이유도,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확인한 결과, 해당 택배기사들에 대한 전산코드 요청은 없었다”며 “녹취록에 등장하는 소장님이 오해를 하셨거나, 잘못 말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업계가 좁다보니 대리점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 수는 있다. 문자메세지도 그런 차원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회사 차원에서 그런 문자를 돌리거나 지시를 내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또한 갈등의 원인 중 하나인 ‘오전하차 종료’ 요구에 대해서는 “택배업 특성상 매일 물량이 다르고, 요일과 계절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물량이 많은 날은 배송물품 배정이 다소 늦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12시에 물류 배정을 마친다면 피해는 고객에게 돌아가게 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회사 차원에서도 대형 터미널을 신축하고, 현장에 자동분류기를 설치하는 등의 대책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택배연대노조는 CJ대한통운을 부당노동행위, 업무방해, 지위남용 등으로 고발하고, 국가인원위원회에 제소하는 등 강력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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