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의점 CU가 지난해 12월 경북 경산에서 근무하던 아르바이트 근로자가 봉투값 20원을 두고 고객과 실랑이를 벌이다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지 112일이 지난 4일 재발방지책을 내놨다. <뉴시스>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런데 내용도 부실하다. 대책이라고 내놓은 방안들은 하나같이 기존에 해오던 것들과 큰 차이가 없다. 당연히 진정성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경북 경산에서 단돈 20원짜리 봉투 때문에 손님과 실랑이를 벌이다 생을 마감해야 했던 아르바이트 근로자의 가족과 고객들에게 “안전한 근무 환경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CU 얘기다.

◇ 경산 CU 사건 후… 112일 만에 나온 사과문

112일. 편의점 CU가 지난해 12월 경북 경산에서 발생한 아르바이트 살인 사건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놓기 까지 걸린 시간이다. 4일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박재구 대표 명의로 된 짤막한 사과문 형식의 공문을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개재했다.

‘안전한 근무 환경’을 만들겠다는 게 핵심이었다. 엄연히 CU의 보라색 조끼를 입고 일하다 흉기에 의해 살해된 근로자의 유족과 고객에게 본사가 장장 3개월이 지나서야 내놓은 대책은 이랬다.

우선 ‘안전사고 예방점검을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편의점 3사(CU·GS25·세븐일레븐) 모두에서 시행중인 ‘한달음 서비스’가 잘 작동되고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게 골자다. 한달음 서비스란 경찰과의 핫라인이다. 비상 상황 발생 시 전화 수화기를 7초 이상 내려놓으면 112 상황실에 자동 신고 된다. 통신사가 제공하는 무료 서비스로, 편의점 본사가 부담해야 할 부분은 없다.

해당 서비스는 전국 편의점 대부분에 이미 설치돼 관리되고 있다. SC(Store Consultant)라 불리는 본사 직원들이 일주일에 1~2회씩 매장을 방문해 안전 관리 점검 및 매장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CU관계자는 “총기수입이 일상인 군대에서 ‘특별한 일’이 있는 경우 총기 등 장비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로 ‘안전사고 예방 매장 개발’에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계산대를 외부에서 잘 보이도록 배치하는 등 편의점 매장에 범죄환경예방디자인(CPTED·셉테드)을 적용시키겠다고 밝혔다. 일부 선진국에서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셉테드는 지방 선거 때마다 전국 지자체장 후보들이 내거는 대표적인 선심성 안전공약으로 꼽힌다. CU는 계산대와 CCTV의 위치를 최적화시키겠다고만 할 뿐, 구체적인 실현 방법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이외에도 CU는 창고를 계산대 인근에 배치하고 ‘-자형’ 테이블로 연결시켜 범죄 등 비상상황 발생 시 근무자의 도피가 용이한 ‘안심 카운터’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 역시 앞서 언급한 셉테드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 “산재보험금 1억원 본사가 지급”… 오보로 밝혀져

알바노조 관계자는 “사과로 인정하기 어렵다. 언제까지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내용 없이 ‘노력하겠다’, ‘마련하겠다’는 두루물숭한 얘기 뿐”이라며 “잠잠하던 여론이 본사 앞 시위로 다시 이슈가 되자 급한 불부터 끄고 보겠다는 심산에서 나온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실제 사건 발생 후 100일 가까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CU는 지난달 23일 알바노조가 주축이 된 ‘경산CU편의점사건 시민대책위원회’가 본사 앞 시위를 시작한 지 12일 만에 사과문을 내놨다.

CU의 진정성에 의구심이 드는 대목은 이뿐만이 아니다. CU가 사건 피해자와 유족에게 지급한 금액은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언론에서 BGF리테일이 유족 측에 1억원 가량의 산재보험금을 전달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금액은 피해자가 일했던 매장의 점주가 개인적으로 가입한 산재보험을 통해 지급된 것으로 본지 취재 결과 밝혀졌다.

편의점 3사 가운데 산재보험 비용을 본사에서 지급하지 않는 곳은 CU가 유일하다. 경쟁업체인 GS25와 세븐일레븐은 점주는 물론, 등록된 아르바이트 근로자의 보험 비용을 본사에서 부담하고 있다. CU관계자는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점차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