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N ‘혼술남녀’ 제작에 참여했던 신입PD가 지난해 10월 종방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사위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난해 방송된 드라마 ‘혼술남녀’는 노량진을 배경으로 학원강사와 공무원 시험생들의 ‘혼술(혼자 술을 마심)’ 이야기를 다뤄 많은 화제를 모았다. 이 시대 청춘들의 고달픈 삶을 잘 투영했다는 평가와 함께 특히 청춘 세대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고, ‘혼술 문화’ 확산에도 적잖은 영향을 줬다.

그런데 ‘혼술남녀’가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 지난해 10월, 한 청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청춘들에게 위로를 건넨 ‘혼술남녀’를 제작해온 막내 조연출 PD였다.

◇ 청춘에게 위로 건넨 ‘혼술남녀’, 또 다른 청춘은 죽음 선택

18일, 한 어머니가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쏟았다. 너무나 착하고 바르게 커온 아들, 한창 청춘이었던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의 눈물이었다. 어머니는 “2016년 10월 26일에서 시간이 멈춰있다. 아직도 아들이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흐느꼈다.

어머니는 현직 교감선생님이다. 남편과 함께 오랜 세월 교육자의 길을 걸어왔다. 지극히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이었다. 하지만 불과 6개월 새 모든 것이 달라졌다. 자기 자신보다 아들을 더 사랑했던 남편은 아들을 잃은 슬픔에 몸이 상해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어머니는 세상을 향해 호소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어머니의 아들은 고(故) 이한빛 씨. 그는 서울의 한 명문대를 졸업하고, 지난해 CJ E&M 신입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씨는 다른 이들의 어려움을 나눌 줄 아는 따뜻함을 가진 사람이었다. 대학 때부터 사회적 문제, 특히 사회적 약자들의 현실을 함께 고민해왔다. 그의 이러한 마음은 취직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취직하자마자 받은 월급을 416연대, KTX해고승무원, 빈곤철폐연대, 사회진보연대 등에 기부했다.

CJ E&M에 입사한 이유도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 싶어서였다. 본인이 처음 참여한 작품 ‘혼술남녀’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의 작은 꿈은 너무도 짧고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입사한지 10개월, 첫 작품 ‘혼술남녀’가 끝나자마자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18일, 고 이한빛 씨의 유가족과 대책위가 기자회견을 갖고 CJ E&M의 사과 및 진상규명, 재발방지 등을 촉구했다. <시사위크>
◇ 살인적 업무강도에 인격모독까지

고 이한빛 씨의 어머니는 회사를 통해 처음 아들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들의 상사는 경황이 없는 어머니에게 아들이 회사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아들을 키우면서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말이었다. 곧이어 비보가 전해졌다. 아들의 죽음이었다.

이씨는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을까. 우선 그가 남긴 유서엔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고민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촬영장에서 스텝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 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팠어요. 물론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들 아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아들의 죽음 뒤에 회사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 어머니는 회사 측의 조문을 일체 거부했다. 그리고 장례를 치른 뒤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군복무 중인 둘째 아들을 통해 도움을 줄 사람들도 만났다. 청년유니온, 민변 변호사 등이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대책위가 자체적으로 확보한 자료 및 증언은 또 다른 죽음의 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이씨는 감당하기 힘든 고된 업무강도에 시달리고 있었고, 동시에 조직 내부에서 심한 인격 모독과 왕따 수준의 불합리한 처우를 당하고 있었다.

우선 업무강도의 문제다. ‘혼술남녀’는 원래 ‘반 사전제작’으로 기획돼 7월 5일에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했다. 첫 방송은 9월 5일이었다.

하지만 중간에 문제가 발생해 8월 중순께 외주업체 및 스텝이 대거 교체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사전제작은 사실상 의미를 잃었고, 촬영 스케줄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대책위가 업무 메신저 및 통화내역을 통해 확인한 결과, 이씨는 8월 27일부터 10월 20일까지 55일 동안 단 이틀밖에 쉬지 못한 것으로 추정됐다. 또, 같은 방식으로 9월 20일부터 29일까지 분석했더니 열흘 동안의 수면시간은 45시간 20분으로 계산됐다. 보수적으로 잡은 것이 이 정도다. 하루 평균 4~5시간 밖에 자지 못한 채,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 새벽에 퇴근하는 격무가 반복된 것이다.

업무강도 뿐 아니다. CJ E&M 정규직이자, 막내 조연출이었던 이씨는 외주업체, 즉 계약직을 관리하는 것이 주된 업무 중 하나였다. 본인 스스로도 고된 업무에 시달리면서, 다른 이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이중적인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스트레스는 유서에도 잘 드러나 있다. 또한 이씨는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외주업체 교체에 따른 스트레스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CJ E&M의 조직문화는 지친 이씨를 완전히 무너뜨린 것으로 보인다. 대책위가 확보한 업무 메신저 및 녹취록에서는 이씨를 향한 욕설과 인격모독이 확인됐다. 고된 업무강도로 인해 지각을 하는 경우에도 유독 이씨를 향해서만 강한 비판이 쏟아졌다. 심지어 그가 실종된 뒤에도 같은 부서 동료들은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회사에서 뒤늦게 가족에게 연락을 취한 것도 그가 갖고 있던 ‘법인카드’ 회수 때문이었다.

청춘들을 위로하는 드라마 제작을 위해 고된 업무에 시달린 고 이한빛 씨는 정작 어떠한 위로도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고 이한빛 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메시지가 실현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시사위크>
◇ “아들의 메시지가 실현되도록 엄마가 나설게”

‘혼술남녀’를 방송한 곳은 tvN. CJ E&M이 운영하는 곳이다. 케이블채널이지만 수준 높은 콘텐츠로 지상파 못지않은 화제성을 자랑한다. ‘응답하라 시리즈’부터 ‘나인’, ‘시그널’, 가장 최근의 ‘도깨비’까지 작품성과 흥행을 모두 잡은 드라마작품이 많다. 예능에서도 최근 ‘윤식당’을 비롯해 ‘꽃보다 시리즈’, ‘삼시세끼’, ‘수요미식회’, ‘SNL 코리아’ 등으로 많은 시청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tvN은 ‘미생’과 ‘혼술남녀’, ‘꽃보다청춘’ 등을 통해 힘든 시대를 보내고 있는 청춘들을 위로해왔다. 마치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 방송들은 청춘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고, 그 자체가 다른 어떤 것보다 큰 위안이었다.

이씨의 안타까운 죽음과 관련해 CJ E&M은 처음엔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했다. 회사 측과 유가족의 면담도 어렵지 않게 성사됐다. 하지만 CJ E&M은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모습을 보였다.

고 이한빛 씨 죽음의 진상규명을 위해선 업무강도의 수준과 조직문화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명확하게 밝혀야 했다. 이에 대책위는 이씨의 정확한 출퇴근 시간 자료와 메신저 등에 남은 인격모독 정황 설명을 요구했다.

CJ E&M 측은 대책위 측이 지적한 두 가지 핵심내용을 모두 부인했다. 업계 특성을 감안하면 업무강도가 높은 편이 아니었고, 조직 내 학대나 모욕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답했다. 오히려 이씨의 성격과 근무태만을 지적했다. 하지만 출퇴근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 제작일지는 없다고 밝혔고, 조직 내 문제와 관련해서는 당사자 인터뷰가 조사의 전부였다.

CJ E&M은 이처럼 납득하기 힘든 답변만 내놓으며 대책위와의 합동조사를 거부했다. 또 대책위가 요구하는 자료는 내놓지 않은 채 대책위가 확보한 자료만을 요구했다.

결국 유가족과 대책위는 CJ E&M에게 더 이상 문제해결의 의지가 없다고 판단,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제기하기로 했다.

이씨의 어머니는 “처음엔 대책위 활동이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 같아 두렵고 무서워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들에게 진 빚을 꼭 갚기 위해 아들의 죽음과 직면하기로 했다”며 “아들의 죽음이 안고 있는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젊은 청춘들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들이 이 사회에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실현될 때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위는 CJ E&M 측의 진성정 있는 사과와 진상규명, 재발방지 등을 요구하며 다양한 활동에 나설 방침이다. 19일부터는 고 이한빛 씨의 동생을 시작으로 CJ 본사 앞 릴레이 1인 시위가 이어진다. 오는 28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추모제도 열 계획이다.

아울러 온라인상에서는 서명운동과 함께, 고 이한빛 씨 페이스북 및 ‘혼술남녀’ 페이스북에 추모와 항의 댓글을 남기는 캠페인을 진행한다. 또한 업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 드라마 제작현장 노동 및 폭력 실태에 대한 제보센터를 운영하고, 증언대회와 국회토론회 등도 계획하고 있다.

한편, 이에 대해 CJ E&M 측은 “아직 내부적으로 입장 정리가 되지 않았으며, 조만간 입장을 밝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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