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N '혼술남녀' 신입PD 사망사건과 관련, CJ E&M이 내놓은 공식입장에 대해 고 이한빛 씨의 유가족과 대책위는 실망감을 표시했다. <시사위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이한빛 님에 대해 큰 슬픔을 표합니다. 또한 어떠한 말도 닿을 수 없는 유가족의 아픔에도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사망에 대한 경찰의 조사 이후 그동안 유가족과 원인 규명의 절차와 방식에 대해 협의를 해왔지만 오늘과 같은 상황이 생겨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당사 및 임직원들은 경찰과 공적인 관련 기관 등이 조사에 나선다면 적극 임할 것이며, 조사결과를 수용하고 지적된 문제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등 책임질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안타까운 일로 아픔을 겪고 계시는 유가족분들께 애도를 표하며, CJ E&M과 tvN에 관심을 주시는 모든 분들께 송구한 말씀을 전합니다.”

지난 18일 고(故) 이한빛 씨의 죽음과 관련한 유가족 및 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관련기사:“tvN ‘혼술남녀’ 신입PD 사망… CJ E&M은 ‘모르쇠’”) 이후, 해가 진 뒤에야 나온 CJ E&M의 공식입장이다.

CJ E&M은 고인을 향한 애도의 뜻과 함께 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무언가 개운치 않다.

고 이한빛 씨의 유가족과 대책위가 기자회견을 통해 CJ E&M에 요구한 것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고인의 명예회복, 그리고 재발방지다. 특히 지난 6개월 동안 CJ E&M 측이 보인 미온적인 태도를 규탄했다.

이 같은 태도는 CJ E&M의 공식입장에서도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CJ E&M이 “적극 임하겠다”고 밝힌 대상은 유가족과 대책위가 아닌, 경찰 및 기관의 조사다.

유가족과 대책위가 고인의 죽음을 뒤늦게 사회에 고발한 것은 CJ E&M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사망 직후 CJ E&M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했고, 유가족과의 면담도 어렵지 않게 성사됐다.

또한 tvN은 고인이 제작에 참여한 ‘혼술남녀’ 뿐 아니라 ‘미생’ 등 이 시대 청춘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작품을 다수 선보여 왔다. ‘SNL 코리아’를 통해 통쾌한 사회 풍자를 전하며 정권의 핍박을 받기도 한 곳이다.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 벌어진 부조리한 사건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일 것이라 유가족은 생각했다.

그러나 TV 속 tvN과 현실의 tvN은 전혀 다른 존재였다. 불과 몇 개월 만에 유가족과 대책위의 믿음은 완전히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J E&M은 유가족과 대책위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이 아닌, 경찰과 기관에 협조하겠다는 입장만 밝혔다.

유가족과 대책위가 요구하는 ‘본질’은 법적 책임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고인이 입사한지 불과 몇 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이유를 회사가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구조적 개선을 통해 ‘또 다른 이한빛’이 나오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 믿음 무너뜨린 CJ E&M, 본질 외면하나

CJ E&M은 공식입장 발표 이후에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사실관계 및 향후 대응방침에 대해 “언론을 통해 전해질 경우 자칫 유가족과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정작 유가족과 대책위는 CJ E&M의 공식입장을 언론을 통해 전해 들었다. 그리고 또 다시 큰 실망감을 나타냈다.

대책위 측은 “CJ E&M의 공식입장은 고인 사망 이후 6개월 동안 이어진 세 차례 면담 및 두 차례 서면답변과 전혀 다른 것이 없다”고 밝혔다. 사실관계에 대한 명확한 답변이나, 뚜렷한 해결 의지 모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두 가지 문제에 대한 답변을 재차 요구했다. 고 이한빛 씨의 죽음과 관련해 원인과 책임을 인정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어떤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지다. 이에 대해 CJ E&M 측은 아직 대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고 이한빛 씨에 대한 기자회견 이후, ‘혼술남녀’가 포털사이트 실시간검색어에 등장하는 등 사회적 관심이 뜨겁다. 이씨의 동생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번 사건을 조사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남일 같지 않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을 향한 세간의 뜨거운 관심엔 많은 청춘들의 씁쓸한 공감이 담겨있다.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 ‘혼술’을 하는 ‘미생’들이다.

드라마나 예능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건네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본질적이고 큰 위로는 현실 속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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