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범 전 국방홍보원장.
[시사위크] 지난 13일에 이은 두 번째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해묵은 ‘주적(主敵)’ 논란이 또 불거졌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더불어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유승민 후보는 이 질문을 통해 문 후보의 대북관이나 안보관을 드러내 보려고 한 듯 보였다.

이에 문재인 후보가 “그런 규정은 대통령으로서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사람이다”라고 답하자 유승민 후보는 “우리 국방백서에 주적이라고 나온다. 대한민국 군 통수권자가 주적이라고 말을 못하는 게 말이 되나?”라고 재차 다그치고 나섰다.
 
이와 관련, 국방부는 “여러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어 주적개념을 쓰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방부 문상균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2016년 국방백서에 보면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다’ 이렇게 표현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기자들이 “우리의 적이라는 표현이 주적과 같은 뜻이냐?”고 묻자 “그렇게 이해해도 된다”고 답변하고, “표현 그대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다, 그렇게 이해를 하면 되겠다”고 의미를 해석해 줬다.

2016년 12월 발간된 국방백서는 북한의 핵·미사일을 비롯한 위협을 거론하며 “이러한 위협이 지속되는 한, 그 수행 주체인 북한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 규정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주적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북한 정권을 적으로 규정한 것만으로도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표현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국방백서를 처음 발간하기 시작한 것은 1967년부터다. 북한군 특수부대에 의한 청와대 기습사건과 미 정보함 푸에블로 호 납치사건,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 한반도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1968년을 딱 1년 앞둔 시점이었다. 그 후 매년 국방백서가 발간됐지만 북한을 주적이라고 명문화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국방백서에 “북한을 주적으로 상정하면서~”라는 말을 쓰면서 ‘주적’이란 표현이 처음 등장했다. 이 말은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다’라는 명시적인 표현과는 많이 다르다.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라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995년 당시 YS정부는 어떤 경위에서 ‘주적’이라는, 전에 사용하지 않던 표현을 국방백서에 넣게 됐을까? 직접적인 원인은 1년 전인 1994년 3월 판문점에서 열렸던 남북 회담 당시 박영수 북측 대표의 이른바 ‘서울 불바다’ 발언이 계기가 됐다.
 
그 무렵 북한은 1993년 핵비확산조약(NPT)과 199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잇달아 탈퇴함으로써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에 미국은 북핵 시설을 선제 폭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대내외에 공언했다. 이른바 외과수술 같은 선제공격(Surgical strike)을 말하는 것이다. 당시 YS는 미국 대통령과 물밑 협상을 통해 북핵 시설 선제타격 계획을 취소하도록 했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이 돌연 사망하기 전에 발생한 상황이다.
     
이에 앞서 YS는 1993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도 민족 보다 나을 수는 없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한다. 당시 김일성은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담고 있는 이 연설문을 읽어보고 상당히 감동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 초기 YS는 비전향 장기수인 리인모 노인을 북한에 송환하고, 진보 학자로 명성이 높은 한완상 서울대 교수를 통일부총리로 기용함으로써 북한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냈다. 머지않아 추진할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기초 작업의 일환인 셈이었다.
 
그러던 중 한반도를 둘러 싼 주변국 상황이 급변하면서 문민정부가 추진하려던 대북 유화정책은 곧바로 위기를 맞게 된다. 국내에서는 대북 강경론이 고개를 들고 때마침 불거진 김일성 조문파동까지 겹쳐 모처럼 조성되려던 남북 화해무드는 급속히 냉각됐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국방부는 이듬해 1995년 발간하는 국방백서에서 어떻게든 대북 강경입장을 표현하려 했다. 고심 끝에 나온 것이 바로 “북한을 주적으로 상정하면서~”라는 표현이었다. 이것이 그 후 온 사회를 시끄럽게 만든 주적논쟁의 기원이다.

1995년판 국방백서 제1장 제2절의 ‘국방목표’는 다음과 같이 길게 설명돼 있다.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한다’ 함은 북한이 기존의 대남 적화전략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공세전력의 전진배치 및 긴장조성, 군사동원 태세 강화, 통일전선 형성을 위한 대남 공작활동 등을 멈추지 않고 있는 사실을 감안하여 북한을 주적으로 상정하면서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외부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며, 현대적 안보개념이 군사 위주에서 정치·경제·외교·문화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변화하고 안보대상의 범주가 확대됨에 따라 예상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안보위협에도 동시에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렇게 백서에 올라 간 주적 표현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남북 간에 화해무드가 조성되면서 국방백서에 있던 ‘주적’이라는 표현을 삭제하거나 대체하는 방법을 고심한 끝에 후자, 즉 대체하는 쪽을 택하게 됐다.
 
마침내 2005년 초 발간된 국방백서에서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대량 살상무기, 군사력 전방배치 등은 직접적 군사위협”이라는 표현으로 바꾸게 된다. ‘주적’이라는 명시적인 표현 대신 ‘직접적 군사위협’이라는 완화된 표현으로 대체된 것이었다. 이런 기조는 이명박 정부 때까지도 이어져 ‘현존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 등으로 오히려 더 완화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0년 국방백서에서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명시하기에 이르렀다. 북한이 2010년 천안함을 폭침시키고 연평도 포격도발을 감행함에 따라 정부는 ‘북한군’을 ‘적’으로, ‘주적’을 ‘우리의 적’으로 각각 정리하게 된 것이다. 이런 기조는 2017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역대 정부의 주적논쟁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그것을 넣느냐 빼느냐로 번번이 극심한 갈등국면이 조성됐고, 그 때마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한 때는 백서발간을 중단하기도 했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저마다 가상의 적을 두고 있다. 바로 그 가상의 적을 항상 예의주시하면서 전략도 수립하고 국방력도 증강시키게 된다. 그런데 어떤 나라도 그 나라 공식 문서에 상대국이 주적임을 활자로 명시하지 않는다. 공공 문서나 공개된 자료에 ‘당신이 나의 주적이오’ 하고 명문화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이다. 전략적 모호성은 바로 이럴 때 필요한 것이다.
 
과거 냉전시대 미국과 일본은 소련을, 자유 월남은 월맹을, 서독은 동독을, 인도는 파키스탄을 가상의 적으로 삼고 있었지만 상대국을 주적이라고 문서에 명시해 둔 적은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특정 국가를 가상적으로 상정하는 것과 그것을 주적으로 문서에 밝혀두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물론 우리나라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북한은 주적’이라고 말한 대통령은 없었다.

대선을 불과 보름 앞 둔 시점에서 후보들이 경쟁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기 보다는 당선 뒤에 국정을 어떻게 이끌고 가겠다는 비전을 내놓고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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