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이한빛 씨의 어머니(가운데)는 이날도 눈물을 참지 못하며 CJ E&M의 책임있는 태도를 요구했다. <시사위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어머니는 또 다시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응답 없는’ CJ E&M을 향한 호소였다. 하지만 한 아들과 청년의 죽음 앞에서 CJ E&M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 “유가족에겐 아무 말도 없었다”

24일 오전, 서울 상암동 CJ E&M 본사 앞에서는 고(故) 이한빛 PD의 유가족 및 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지난 18일 첫 기자회견 이후 일주일여 만이다.

이씨의 어머니는 이날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첫 마디는 “울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아들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 아침이면 ‘아침 먹어야지’라며 아들의 방문을 열다 주저앉곤 한다”며 울음을 참지 못하고 오열했다.

어머니는 “사과라는 것은 상처받은 사람에게 직접적이고, 진실되게 해야 한다”며 “비록 거대한 괴물과의 힘겨운 싸움이지만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겠다. 빛이 어둠을 이기고, 진실은 언젠가는 이긴다는 것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 유가족과 대책위는 지난 18일 첫 기자회견 이후 CJ E&M 본사 앞에서의 1인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시사위크>
이씨의 유가족과 대책위는 첫 기자회견을 통해 이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세상에 알리고, 이러한 사태를 낳은 CJ E&M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한 바 있다. 유가족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명확하게 진실을 규명하고, 이러한 비극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이 기자회견은 상당한 후폭풍을 몰고 왔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장시간 등장했을 정도다. 특히 ‘혼술남녀’를 비롯해 tvN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겨보던 시청자들은 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CJ E&M 측은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우선 고인의 죽음과 유가족의 아픔에 대해 애도의 뜻을 표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공적인 관련 기관 등이 조사에 나선다면 적극 임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등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CJ E&M 측은 극도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구체적인 입장이나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엔 “자칫 언론을 통해 전달될 경우 유가족과의 오해가 깊어질 수 있다”며 답을 아꼈다.

하지만 CJ E&M은 정작 유가족이나 대책위에게 일체의 연락도 없었다. ‘애도의 뜻’ 조차도 언론에만 전했을 뿐이다.

◇ 두 얼굴의 CJ E&M, 속내는 “법대로 하자”

▲ CJ E&M 측은 경찰 및 공적인 기관의 조사에 적극 임하겠다는 입장만 밝혔을 뿐, 유가족 및 대책위의 요구는 외면하고 있다. <시사위크>
고 이한빛 씨는 실종된 지 5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매일 같이 이른 아침부터 새벽까지 이씨의 노동력을 사용해온 CJ E&M은 막상 사라진 그를 즉각 찾지 않았다. 다시 말해 외면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이씨의 유가족이 CJ E&M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처지다.

CJ E&M의 공식입장에서 주목할 부분은 ‘애도’가 아닌 그 다음이다. 경찰과 공적인 기관을 말하고 있다. 유가족 및 대책위 차원의 진상규명에는 협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법대로 하자’는 의미다.

이는 CJ E&M이 그동안 tvN의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쌓아온 이미지와 전혀 다른 얼굴이다. 잔혹한 현실에 놓인 청춘을 위로하던 따듯함은 찾아볼 수 없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네티즌들이 남긴 댓글 중 일부를 피켓으로 만들어 손에 들었다. 그중엔 “내 고단한 하루를 위로해주는 드라마가 다른 누군가의 잔혹한 하루로 만들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라는 내용도 있었다. 그랬다. 청년들을 위로해주던 드라마 ‘혼술남녀’는 또 다른 청년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다.

고 이한빛 씨의 유가족과 대책위는 오는 28일 추모제를 진행하는 등 그가 남긴 메시지가 의미 있는 사회적 변화로 이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일 계획이다.

이씨의 친구 박수정 씨는 고인에게 남긴 편지를 통해 “구의역에서 홀로 숨진 김군, 부장검사의 폭언과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검사, 인격모독을 가장 많이 당하는 곳에서 일하다 죽음을 택한 콜센터 실습생 모두 책임자가 처벌 받고 재발방지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지켜봤어야 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며 “이제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내 친구를 잊어버릴까 두렵다. 끝까지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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