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가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하고 나선 가운데, ‘일본 기업’이란 꼬리표를 완전히 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한일전을 하면 한국을 응원하나?” 2015년, 우여곡절 끝에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했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받은 질문이다. 국정감사와 어울리지 않는 다소 황당한 질문에 당시 신동빈 회장은 파안대소하며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고 답했다. 질문을 한 국회의원은 이후 논란이 확산되자 사과했다.

지금도 종종 회자되는 이 에피소드는 롯데그룹과 신동빈 회장을 향한 세간의 시선이 반영된 것이었다. “롯데가 한국기업이냐, 일본기업이냐”라는 정체성을 향한 의구심이다.

사실, 그전까지 롯데는 우리 국민에게 무척이나 친숙한 기업이었다. 일상생활과 밀접한 사업 분야가 많았고, 놀이공원 ‘롯데월드’나 프로야구 구단 ‘롯데 자이언츠’의 존재도 롯데를 더 친숙하게 만들어줬다.

그랬던 롯데가 차가운 시선을 받게 된 것은 2015년부터다. 후계문제를 놓고 난데없이 형제간 갈등이 터졌다. 그동안 전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였기에 파문은 컸다. 특히 서로를 해임하고, 90대 노친을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는 모습은 볼썽사납기까지 했다.

더 심각한 것은 롯데와 오너일가 실체가 온 국민에게 낱낱이 밝혀졌다는 점이다. 우선, 형제간의 경영권 갈등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롯데의 지배구조 실체가 드러났다. 규모나 실적은 한국 롯데가 훨씬 크지만, 지배구조 상으로는 일본 롯데가 위에 있었다.

갈등의 주인공인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SDJ 코퍼레이션 회장은 더 큰 충격을 안겼다. 신동주 회장은 아예 한국말을 못했고, 신동빈 회장의 한국말은 ‘일본인의 한국말’이었다. 롯데를 향한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 지주회사 전환으로 일본 연결고리 끊기

이후 롯데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불매운동 등 여론의 뭇매를 맞은데 이어 지난해에는 검찰로부터 강도 높은 수사를 받기도 했다.

이에 신동빈 회장은 대국민사과는 물론, 대대적인 혁신안도 내놓았다. 그리고 창립 50주년을 맞은 올해, 롯데는 대대적인 변화를 추진 중이다.

여기엔 ‘일본 꼬리표’를 떼기 위한 지배구조 개편도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롯데는 최근 핵심계열사 4곳(롯데제과,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이 일제히 이사회를 개최하고,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현재 롯데의 지배구조는 호텔롯데가 한국 계열사들을 거느리고 있다. 다시 호텔롯데는 일본롯데홀딩스의 지배를 받고, 궁극적으로 일본롯데홀딩스는 일본 광윤사가 지배 중이다. 정체성 논란이 불거진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지주회사 체제로 변화할 경우 신동빈 회장이 새로운 지주사의 최대주주가 되고, 이 지주사가 롯데의 한국 계열사를 거느리게 될 전망이다.

이 같은 변화의 핵심은 일본과의 연결고리를 끊는데 있다. 당초 롯데는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각종 악재가 겹치면서 ‘플랜B’를 가동하게 된 모습이다.

◇ 지우기 힘든 일본 발자취, 국민 정서 넘을까

▲ 롯데의 형제간 갈등은 결과적으로 롯데가 지닌 일본색을 드러나게 만들었다. <뉴시스>
이처럼 변화의 시동을 건 롯데지만, 여전히 크게 두 가지 숙제가 남아있다.

먼저, 신동빈 회장이 재판으로 분주한 가운데 지주회사 전환 작업이 원활하게 진행될지 여부다. 신동빈 회장은 현재 롯데 비리와 관련해 횡령·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또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뇌물공여죄로도 불구속 기소됐다. 당분간 경영보단 재판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지주회사 체제 수립으로 ‘일본 꼬리표’를 완전히 뗄 수 있느냐다. 물론 “한국에서 번 돈을 일본으로 가져간다”는 지적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민정서상으로도 ‘일본 꼬리표’를 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신동빈 회장은 출국금지 상태에서 둘째 딸 결혼식 참석을 위해 일시해제를 요청한 바 있다. 그의 둘째 딸은 일본인 아나운서와 결혼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출국금지가 완전히 해제된 뒤 신동빈 회장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일본이었다.

신동빈 회장은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고, ‘시게미쓰 아키오’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어머니는 일본 사람이다. 도쿄의 최고 명문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쳐 노무라증권에서 근무한 바 있다. 한국 국적이 없어 군대는 가지 않았고, 1996년 42세가 돼서야 한국 국적을 다시 취득했다. 본인 역시 일본인과 결혼했고, 자녀들도 일본 국적을 갖고 있다.

이는 지주회사 전환 같은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살아온 삶 그 자체인 만큼 영원한 꼬리표일 수밖에 없다. 특히 신동빈 회장의 뒤를 이을 다음 세대는 고민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롯데는 2015년 이후 유독 애국심을 강조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제2롯데월드 타워에 내건 초대형 태극기가 대표적이다. 각종 사회공헌 활동도 애국과 관련된 것이 적지 않다. 지주회사 전환으로 일본과의 연결고리 끊기에 나선 롯데가 국민들의 마음 속에서도 ‘한국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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