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로자의 날'이었던 지난 1일 타워크레인이 충돌해 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현장의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노동자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각국의 노동자들이 연대의식을 다지는 날’ 메이데이(May-day) 즉, 우리나라에서 ‘근로자의 날’이라고 부르고 있는 기념일의 뜻이다.

전 세계가 노동자의 노고를 위로하고 노동의 참뜻을 되새기는 지난 1일, 국내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져 안타까움을 더해 주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다 노동자 수십 명이 죽거나 다치는 대형 안전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 ‘근로자의 날’에 일하다 숨진 노동자들

사망 6명, 중상 5명, 경상 20명. 현재까지 파악된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로 발생한 인명피해 규모다. 지난 1일 오후 2시50분경 경남 거제의 삼성중공업 조선소에서는 길이 50∼60m, 무게 32t 짜리 크레인이 전도돼 작업 중이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날 사고는 근로자의 날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더욱 비극적이다. 과거에 비해 나아지기는 했으나,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국내 노동 환경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 가운데 하나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업체 간 간극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평가다.

삼성중공업에 따르면 사고 당일 현장에는 약 1만3,000명이 출근했다. 근로자의 날을 맞아 삼성중공업 임직원은 1,000명의 필수 인력만이 배치됐다. 나머지 1만2,000명 전부는 협력사 소속이었다. 사상자 대부분이 협력업체 직원들이었던 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민주노총 1일 성명을 통해 “정확한 사고원인은 더 조사되어야 하겠지만, (사상자는)대부분 하청 협력업체 노동자로 추정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노동절에 일하다 떼죽음을 당해야 하는 것이 2017년 노동자의 현실임을 곱씹으며 더 할 수 없는 참담함과 분노를 감출 수 없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애도의 물결과 함께 원청업체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의당의 심상정 대선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죽음의 행렬 당장 끝내야 한다. 원청을 처벌하고 산재 사망에 대해서는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며 “어떤 이유로든 안전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으면 기업을 살인자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 역시 “무엇보다 사고원인과 경위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관심을 갖고 챙기겠다”면서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사업장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약속, 반드시 지키겠다”고 말했다.

◇ 수신호 오류로 크레인 충돌… ‘전형적인 인재’

삼성중공업이 밝힌 사고의 원인은 두 크레인의 충돌이다. 800톤급 골리앗 크레인의 반경 안에 있던 32톤급 타워크레인이 충돌해, 타워크레인을 지지하던 붐대가 부러졌다. 쓰러진 타워크레인은 오후 3시 휴식시간에 앞서 미리 화장실을 이용하고 흡연을 하던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간이 쉼터를 덮쳤다는 설명이다.

삼성중공업은 “충돌의 원인은 신호수와 크레인 운전수간에 신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인 것으로 보고 있지만, 자세한 사고 원인은 경찰에서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회사 측이 파악한대로라면 이번 사고는 근로자의 날에 무리하게 작업을 진행하고, 현장을 확실히 통제하지 못한 삼성중공업과 크레인의 안전운전을 책임지는 실무자들의 과실이 빚어낸 전형적인 인재인 셈이다.

한편 크레인 충돌사고 이후 해당 작업에 대해서만 작업 중지를 명령을 내렸던 고용노동부는 2일 조선소 전체로 작업 중지 명령을 확대했다. 노동부는 현장 정밀 조사를 벌여 사고원인을 규명하고 법 위반사항 등이 적발되면 책임자를 처벌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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