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당 탈당파는 왜 그랬을까

▲ 김성태 의원 등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들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위해 정론관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 맨 오른쪽 황영철 의원은 탈당을 선언했다 파장이 커지자 다시 당에 남기로 했다. 바른정당에 따르면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후원금은 3억 3,730만원이 모금되었고, 온라인으로 가입한 당원수는 4069명이다.<뉴시스>
[시사위크=신영호 기자] 의리는 우리나라 정치를 읽는 키워드 중 하나다. 의리는 특정 계파의 생명력을 지탱해주는 정서적 원천이고, 정당의 내부 분열을 막는 울타리다.

‘의리 강조’는 보수와 진보 정당 모두 똑같다. 보수 정당은 상대적으로 진보 정당보다 기율(紀律)이 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공천권 등 인사권을 쥔 당 대표를 중심으로 의원 선수(選數)에 따라 역할이 정해져있다. 예를 들어 초선의원이 저 잘났다고 단독으로 행동하면 이탈로 간주돼 눈 밖에 난다. “의리가 없으면 인간도 아니다”는 2011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언은 보수정당의 기풍(氣風)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진보 진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운동권 특유의 동지 의식이 강한데, 이도 의리론과 다름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4선을 지낸 운동권 출신의 전 의원은 공·사석에서 여러 차례 “사람은 의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었고 듣고 있는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끄덕 하곤 했었다.

철새 정치인이나 배신자라는 낙인은 의리를 깰 때 찍힌다. 동료나 선배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등을 보이거나 당의 가치와 철학을 부정하면 그렇게 된다. 내부 비판은 괜찮지만 배신은 다르다.

작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 일이다. 당시 새누리당 한 재선 의원은 앞장서 탄핵안 발의를 주도했었다. 최순실 청문회 때는 야당 의원보다 더 세게 증인들을 몰아세웠었다. 이 때문에 이 재선 의원은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 양쪽에서 “말이 거칠어 싹수없다”는 둥 따돌림 수준의 푸대접을 받았었다.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보좌진들의 수군거림에 귀가 따가웠었다.

그렇다고 철새나 배신자라는 손가락질은 받지 않았었다. 이 의원은 탄핵안 가결 후 바른정당으로 당적을 바꿨는데, 현재 당내 탈당파와 달리 당에 남아 유승민 후보를 적극 도우고 있다. 반사이익으로 주가도 오르고 있다.

바른정당 탈당파는 위에 언급한 의원보다 점잖은 축에 속하다. 그러나 한순간 절벽 아래로 떨어진 처지로 내몰렸다. 남들은 갖고 싶어도 못 얻는 개혁 이미지를 하루 새 잃었다. 자유한국당 친박계의 복당 반대로 오도 가도 못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페이스북 등 SNS에서는 벌써부터 ‘배신자 철새 낙천·낙선 운동’을 예고하는 이용자들의 글이 눈에 띤다. 당장 다음 선거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 의리 져버리면 배신자 낙인

따지고 보면 탈당파의 행동은 쉽게 납득이 되질 않는다. 내년 지방선거와 2020년 21대 총선을 염두에 둔 계산이라는 해석이 나오는데, 상식적이고 합리적 분석이다. 그러나 복당이나 합당은 대선이 끝나 후에 추진했어도 됐었다.

6월 이후에는 정치권에 정계개편 회오리가 불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에 그때 가서 큰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될 문제였다. 후보와 당을 모질게 비판하면서까지 복당행 열차를 타지 않아도 됐었다. 김무성 선대위원장도 이런 이유를 대며 탈당파를 말린 것으로 전해졌다.

탈당파도 이런 이해득실을 따져 봤을 것으로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탈당파 12명 중 3선 이상 의원만 10명이다. 본인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헤아릴 수 있는, 그래서 신중하게 처신할 수 있는 연륜이 있는 의원들이다.

보수 정당에서 10여 년 간 몸을 담으며 여러 선거를 치렀던 전직 보좌관은 이들의 탈당 배경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선거철이 되면 누구나 판세를 객관적으로 보질 못한다. 평시 땐 가능해도 전시 땐 다르다. 누구나 우리 후보가 이기는 것으로 생각한다. 또 이렇게 하면 판세가 뒤집어 질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생각하는 이성의 힘이 마비되면 그렇다. 거기다 미래까지 생각해보니 덜컥 겁이 났을 것이다. 평소 친한 의원이 가자고 하니 친구 따라 강남가는 식으로 결정했을 수도 있고...바른정당 탈당파 선택을 합리적으로 보는 것도 설득력 있지만 선거라는 특수 상황이 만든 비논리적 해프닝으로도 볼 수 있다”

바른정당 탈당파가 “보수 결집”이라는 대의 때문에 탈당을 했든 개인적 이해관계로 복당을 결정했든, 본인 선택에 따른 값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정치인의 선택에 대해 “정치학자들은 사례를 많이 보라고 권한다. 다른 유사한 사례에서 정치인들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역사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했는데, 과거 철새 정치인들의 현재는 비극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새라는 낙인은 주홍글씨가 돼 평생을 따라다닌다. 뼈를 깎는 노력에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 정치권의 경험칙이다. 보수에서 진보로, 여당에서 야당으로 당적을 옮기면 당원으로부터 우리 의원, 우리 후보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근본적 회의론이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통일민주당에서 새누리당까지 여야를 넘나들며 16번 당적을 바꾼 이인제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 철새 정치인으로 손꼽힌다. 이인제 의원은 한때 대권을 넘본 잠룡이었지만, 지금은 ‘불사조 피닉제’라는 별명이 이름 앞에 꼭 붙는 흔한 의원으로 대우가 급전직하 했다. 보수는 품위라는 등식을 허문 불명예스러운 기록이다.

한나라당 출신인 손학규 국민의당 상임선대위원장도 한번 바꾼 당적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2007년 3월 한나라당 경선에 불만을 품고 탈당한 손학규 선대위원장은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했지만, 당시 정동영 후보에 패했다. 이후에도 당내 경선에서 번번이 패배의 고배를 마셨다.

우리 당 대통령 후보가 경쟁력이 약하다고 돌아서면 그에 따른 역풍은 매서웠다. 2000년대 초 민주당 차세대 리더로 꼽히던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종합상황본부장은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긴 시간 야인으로 지내야 했다. 2002년 16대 대선 때 정몽준 후보를 지지하며 민주당을 떠난 것이 뼈아팠다.

바른정당 탈당 사건은 15년 전 후단협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한다. 한 정치 평론가는 “옆에서 보자면 탈당파는 나쁜 사람들”이라며 “유승민 후보는 원래 새누리당을 안 나오려고 했던 사람인데 김무성 그룹이 보쌈해 나오다시피 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나와 갔고 이제는 (유승민 후보를)버려놓고 자기들끼리 다시 (자유한국당으로)들어간 것”이라며 “국민들이 그 내막을 잘 알기 때문에 역풍이 아주 세게 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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