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성은 작지 않았다. 영호남으로 갈라졌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다시 ‘같은관편’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부 시절 부산경남은 민주진영에 속한 야도(野都)였다. 박정희 유신체제의 김영삼 의원직 제명을 계기로 부산이 ‘민주화’ 투쟁의 깃발을 올렸고 마산과 창원 등으로 번지면서 부마항쟁으로 커졌다. 부마항쟁의 정신은 신군부 시대 광주민주화항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 야도(野都) 부산, 다시 민주진영 성지될까
하지만 노태우 정부시절 ‘3당 합당’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결국 다른 길을 걷게 됐다. 민주진영의 주요 거점이었던 두 지역도 자연스럽게 갈라지게 됐고, 동서 지역감정으로 더 공고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랬던 두 사람의 후예가 다시 손을 잡게 됐으니 그 상징적 의미는 작다고 보기 어렵다.
이에 대해 문재인 후보는 “3당 합당으로 갈라졌던 대한민국의 민주화 세력, 영남의 민주화 세력이 다시 하나가 됐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의 아들들이 손을 맞잡았다”며 “전국에서 정권교체의 태풍이 불고 있다. 부산이 태풍의 발원지”라고 평가했다. 김현철 교수와의 뜨거운 포옹도 있었다.
이날 유세에는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에 동참한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도 함께했다. 뿐만 아니라 김두관, 한정애, 최인호, 김영춘, 박재호, 노웅래, 김해영 의원과 오거돈 전 장관, 문정수 전 부산시장 등 지역정치인들이 총출동했다.
◇ “눈대중으로 봐도 홍준표 때보다 사람 많아”
문 후보는 “정말 많은 분이 와주셨다. 저 끝에 거리가 보이는 끝까지 사람들이 가득 찼다. 양옆으로 나와 있는 골목들에도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전국 유세를 다니고 있는데 가는 곳마다 깜짝 놀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며 “부산에서 조금만 더 힘을 내서 도와주시면 (정권교체) 된다”고 호소했다.
목표 득표율은 부산 60%, 부울경 합산 50%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부산시당 관계자는 “(부산에서) 목표는 60%다. 안되더라도 최소 45% 이상은 나올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며 “다자구도에서 45%는 양자구도 였다면 60%에 상응하는 득표율”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유세가 시작되는 순간 선관위의 최종 사전투표율이 발표돼 문 후보가 잠시 고무되기도 했다. 당초 문 후보는 사전투표율 25%를 목표치로 제시하며, 이것이 달성될 경우 ‘프리허그’ 퍼포먼스를 공약한 바 있다. 최종 사전투표율을 확인한 문 후보는 “프리허그를 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캠프 측은 6일 오후 6시 30분부터 서울 홍대 앞에서 프리허그 일정을 부랴부랴 끼워 넣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