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도겸 칼럼니스트
지난 25년을 꼬박 보리줄기를 다루며 산 아티스트가 있다. 수많은 오브제 가운데 왜 보리일까? 오로지 한 길만을 운명처럼 살아온 이수진 작가의 삶은 ‘보릿고개’처럼 역경의 연속이었나? 어른이 된 이후 평생을 맥간아트(보리줄기예술)에만 애썼던 지난 세월이 썰물처럼 밀려오지만, 그녀는 여전히 허기져 있는 듯하다. 지금도 작가적 창의성과 독창성에 갈증을 느끼며 보다 새로운 현대 예술 기법과 디자인을 고민하며 예술의 경계들 사이를 배회한다.

기존의 맥간아트의 획일적인 판(또는 프레임)은 구상의 문양을 모자이크 기법으로 디자인해서 보릿대를 연결하고 오려붙이는 단순한 작업에 지나지 않은 면도 없지 않다. 그런 문양 등을 뛰어넘어 작가만의 의식이 담긴 작품세계를 맥간아트에 접목하면 어떨까라는 의문을 화두처럼 잡은 이수진 작가. 경계를 넘고 수없는 한계에 부딪치면서 느끼는 고통을 예술로 승화하는 것은 모든 예술인들의 숙명인가보다.

맥간아트의 배경이 되는 판이나 프레임들에 색을 입히며 느끼는 설렘이라는 작가적 열망을 온전하게 간직하며 창의성과 실험적이면서도 미래적인 상상을 당당하게 보리줄기에 결합시킨다. 시각예술 재료로서 보리줄기가 ‘점’을 훌쩍 넘어 ‘선’, ‘면’의 영역에 들어서며, 새롭게 ‘디자인’, ‘패턴’과 자유롭게 만난다. 그리고 그 만남 속에는 이수진 작가의 의식이 움직이다가 자리를 찾아 작품으로 고착된다. 그리고 당시의 의식의 흐름을 문양 등에 실어 그 느낌을 전달한다.

이수진 작가의 작품에는 일상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많은 상징체계를 만난다. 전통적인 문양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그 무엇’이 섞여 독창적인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보리줄기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빛’의 각도까지 가미되어 다양한 색채로 인해 북극 부근에서 오로라를 감상하는 느낌까지 선사해 준다. 오로라와 같은 무궁무진한 변화의 세계가 맥간아트 작품 속에 펼쳐지며 갖가지의 옷을 입으며 그 아름다움을 뽐낸다.

▲ 이수진 작가와 그의 작품들.
때로는 은은하며 때로는 화려하며 관객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일인다역의 연극을 보는 듯한 동적인 입체감까지 다가온다. 그녀의 손가락이 색접착지에 닿는 순간 김춘수의 시 ’꽃’처럼 보리줄기는 생명력을 얻어 예술 작품으로 탄생한다. 생명을 부여받은 오브제들은 이제 친구들을 ‘설렘’으로 기다리며 그녀의 손가락을 목을 빼고 기다리는 모습이 보여진다.

맥간아트가 앞으로 나아갈 길은 멀고도 더 험한 길이다. 그런 처녀지를 개척해 나가는 이수진 작가. 그녀가 있기에 아무런 쓸모가 없이 버려진 보리는 화려한 부활을 꿈꿀 수 있다. 단순한 재생을 넘어 새로운 의미와 상징을 통해 세상과 대화하게 된 보리줄기. 그 맥간아트와 현대예술과의 새로운 접목을 이룬 이수진 수원맥간아트 대표를 만나볼 수 있는 전시회가 오는 16일부터 22일까지 수원미술전시관에서 열린다. 엄동설한에도 푸르른 생명력을 잃지 않는 보리처럼 앞으로 이수진 작가의 작품세계가 향후 어떤 수확을 거두며 나아갈지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이수진 작가는 홍콩 센젠 아트페어에도 초대되었으며, 한국 예술 평론가 협의회 선정 특별 예술가상(전통·연희 : 2012), 한·중·일 문화협력 미술제 대상(2013)을 수상한 바 있다. 또한 주변의 적지 않은 자선행사나 봉사활동에 늘 목격되는 이수진 작가는 나눔을 실천하는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