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을 직접 방문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추진 소식을 전한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난해 10월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지난해 3월 내려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그리고 최근 치러진 대통령 선거 속에 우리 사회는 급박한 변화를 겪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과 동시에 대통령 업무를 소화하면서 앞선 두 정권과의 뚜렷한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취임 후 첫 ‘일자리 행보’로 나선 인천국제공항에서는 파격적인 조치로 세간을 깜짝 놀라게 했다.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하며, 그 출발로 인천국제공항의 ‘비정규직 1만명 정규직 전환 추진’ 소식을 전한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던 노동 정책과 비교해, 접근 및 해결 방식은 물론 의지에서도 큰 차이가 나타난다. 관건은 이 같은 조치가 우리 사회 전반에 원만하게 연착륙 할지 여부다. 이미 각계각층에서 저마다 다른 입장과 반응, 우려와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인천국제공항의 정규직 전환 추진 과정 및 결과는 문재인 정권의 비정규직 해결의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가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 세계적 위상에 반하는 비정규직 실태

인천국제공항은 11년 연속 세계공항서비스평가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대·내외 위상이 높은 곳이다. 경영 성적표도 좋다. 지난해에만 1조3,000억원의 영업이익과 9,6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또한 정규직 신입사원의 초봉 수준도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높은 것은 이뿐이 아니었다. 인천국제공항은 시작부터 비정규직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구조였다. 대규모 국제공항은 그 특성상 물류, 보안, 환경미화, 교통관리 등 다양한 부문에서 일자리를 창출한다. 그러나 인천국제공항은 이들 중 80%가 훌쩍 넘는 비중을 비정규직으로 거느렸다. 그리고 이들의 근무여건은 인천국제공항의 위상과 정반대였다. 임금은 정규직과 비교해 초라하기 짝이 없었고, 고용안정 조차 바랄 수 없었다.

이러한 배경은 인천국제공항이 비정규직 문제에서 갖는 상징성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문재인 대통령 방문 당시 정일영 사장이 직접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추진 계획을 밝힌데 이어 15일에는 본격적으로 TF 가동에 돌입했다. 현재 근무 중인 7,000여명의 비정규직과 조만간 개통될 제2터미널 인력을 포함해 1만여 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TF 팀장은 정일영 사장이 직접 맡았으며, 구체적인 정규직 전환 방법은 여러 방안을 검토해 결정하게 될 전망이다.

▲ 공공비정규직노조는 15일 기자회견을 갖고, 차별 없는 정규직 전환을 강조했다. <뉴시스>
◇ 노동계는 환영… “노동자 당사자 목소리 적극 반영해야” 주문

노동계와 진보진영에서는 우선 환영하는 분위기다. 먼저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의 ‘을지로위원회’는 “가슴이 벅차오른다”며 환영과 기대를 나타냈다. 을지로위원회는 인천국제공항을 비롯해 여러 비정규직 현장을 찾아 문제 해결에 앞장 선 바 있다.

한국노총은 성명을 통해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행보가 국민에게 약속한 ‘비정규직 감축 및 차별철폐’와 ‘노동존중 사회’로 가는 첫 걸음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기대감과 함께 좀 더 적극적으로 ‘노정교섭’을 제안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가 매우 상징적이고 의미도 있지만, 인천국제공항공사와 노조의 직접교섭을 통해 쟁점사항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정부의 시혜가 아닌 노동자의 권리”라는 점을 강조했다. 노동자 당사자가 직접 참여하는 ‘제대로 된 정규직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칫 비정규직이 무기계약직으로만 전환될 뿐, 근무여건과 차별은 개선되지 않아 ‘중규직 문제’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같은 우려의 시선은 과거 참여정부의 실책과도 연결된다. 참여정부의 정책은 뜻하지 않은 비정규직 양산으로 이어진 바 있다. 또한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양산한 이유 중엔 비용절감 외에도 고용 및 안전 문제에 대한 책임회피도 있었다. 이번 비정규직 철폐 움직임 역시 또 다른 꼼수를 낳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일각에서는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지나치게 많은 요구사항을 내걸 경우 오히려 본질을 해결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서는 정치권은 물론 사회 각계각층의 합의가 필요할 전망이다.
◇ 긴장하는 재계… “현실 직시해야”

재계와 보수진영에서는 환영보단 우려의 분위기가 더 크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당대표 권한대행은 새 정부를 향한 여러 우려를 나타내며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모든 비정규직을 하루아침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산타클로스 선물’이 가능하다면 왜 역대 정부가 선심 정책을 발표하지 않았겠나”라는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재계는 정권 초임을 감안해 긴장감 속에 ‘눈치 보기’에 돌입한 모습이다. 당장 민간부문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닌 만큼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책을 마련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는 사업장 별로 제각기 다른 현안과 특징이 있다”며 “점진적으로는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이 맞겠지만, 순식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공공부문의 경우 정부의 의지에 따라 충분히 정규직 전환 추진이 가능한 측면이 있다. 반면 민간부문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사회적 합의와 다양한 연구, 법 개정 등이 뒤따라야 한다.

다만, 공공부문의 변화가 정규직 전환 문제를 사회적 화두로 대두시키고 분위기를 바꿀 가능성은 충분하다. 정부와 노동계의 강력한 정규직 전환 요구를 마주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또 다른 우려는 현실적인 문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막대한 비용이 초래된다. 민간부문에서는 이미 이와 관련된 소송이 진행돼 상당한 규모의 배당금 판결이 내려진 곳도 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바람직한 일이더라도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공멸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부담을 느낀 기업들의 신규 고용 및 투자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위한 정책이 오히려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현재 우리 사회는 비정규직 문제 뿐 아니라 청년 실업, 인구 감소, 고령화 등 다양한 문제를 함께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면 자칫 더 큰 사회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변화엔 진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변화를 미룰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사회 각 구성원들이 지혜를 모으고, 원만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인천국제공항의 향후 행보는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인천국제공항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 과정 및 결과가 모범적인 선례를 남긴다면, 우리 사회는 한층 건강한 변화의 동력을 얻을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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